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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근대문화활성화사업단 게시판 입니다.

<부산근대문화자산활성화사업단> 100년 골목 우암동 소막마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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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2-06-27 조회 1272


100년 골목 우암동 

소막마을 이야기

 


 



안녕하세요? 부산장노년일자리지원센터 부산근대문화자산 활성화사업단입니다

오늘의 포스팅은 소 검역소 마을에서피란민 마을이 된 100년 골목 소막마을입니다소막마을의 입구에 소의 형상을 한 벤치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어요우암동의 소를 소재로 하여 지역주민과 함께, 지역의 정체성을 표현하여 만든 할 수 있게 만든 공공미술 조형물입니다.


, 그럼 우리 함께 소막마을 안으로 한번 들어가 볼까요? 성큼성큼~~



 

우암동 소막마을 주민공동체 센터에 가면 <피란문화자산 따라가는 소막마을 소달구지길> 안내도가 있어요.일단 이 안내도를 보고 어디를 먼저 갈지 정하면 됩니다

저는 마을 주차장에서 투어를 시작해서 소막마을 테마 벽화를 지나 우암동의 근대화 시대로 들어갔습니다피란민 이야기를 찾아보고 소막사 테마를 향해 걸음을 옮기면 전체 총 30분 남짓한 시간이 소요됩니다.



 

마을 주차장 근처에 소막사를 테마로 한 벽화 그려져 있습니다소막사에 있는 소가 마치 집 안에 있는 듯한 벽화도 있네요.등록문화재로 지정되면서 곳곳에 안내문이 있어 소막마을의 유래와 역사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어요.

 

1909년에 조선에서 일본으로 수출하는 소에 대한 전염병 검역이 시행되면서 우암동에 전국 최대 규모의 검역소부산이출우검역소가 설치되었어요검역소는 전염병에 걸린 소를 일본인들에게 제공하지 않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해방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우암동이 피란민 수용소 중 한 곳이 되면서 수많은 피란민이 모여들었어요.피란민들은 소막를 고쳐서 집으로 사용했습니다

초기에는 잡 밖에 부엌이 있었고바깥의 공동화장실을 사용했답니다지금은 주민들이 사용하는 공동화장실이라기보다는 관광객을 위한 공동화장실인 것 같아요.


 

소막사의 삼각형 지붕에는 다락방이 만들어졌고, 산업화를 하면서 1층보다 2층이 앞으로 튀어나온 가분수 형태의 집들이 들어섰습니다. 조금이라도 넓게 사용하려는 마음이 건물 형태를 변하게 만든 겁니다다락방과 가분수 집에 많은 공장 노동자들이 세 들어 살았습니다.



 


여기 보이는 한쪽만 사선 지붕의 집은 옛날 소막사였는데 다른 한쪽은 뜯어서 새집을 지었고,남아 있는 파란색 지붕이 소막사 구조의 집입니다. 지붕 끝이 옆으로 길게 늘어나 있는 게 보이시죠

이것은 가족이 늘어나면서 삼각형 지붕에 수평으로 증축하기도 하고, 수직으로 증축 개조해서 지금의 모습이 되었습니다마을 한가운데에 100년 된 우물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우암동 소막마을에 오면 꼭 가는 곳이 동항성당내호냉면입니다. 당시 우암동 일대에는 수많은 피난민이 전국에서 몰려들어 구호사업이 절실했습니다. 신부가 없던 동항성당에 주임신부로 부임한 하 안토니오 몬시뇰 신부는 집마다 돌아다니며 미군 원조품인 옥수수와 밀가루독일에서 보내온 옷가지를 나눠주며 가난한 이들을 도우며 그들과 생사고락을 함께했습니다.




 

<<당시 주민들은 기억한다, “우암동 일대 판자촌에 살았던 5만여 피난민 중 몬시뇰님의 도움을 받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교육의 중요성을 절감한 몬시뇰 신부는 독일로 가서 한국의 참담한 상황을 전하고 각계각층의 지원을 받아서

1965년 3월 성당 뒤편 부지에 한독여자실업학교를 설립했습니다몬시뇰 신부의 헌신 뒤에는 그의 어머니의 사랑이 있었습니다동항성당 마리아 피정센터는 독일에 있던 어머니가 전 재산을 팔아 아들에게 3억여 원으로 건립됐습니다그래서 그런지 동항성당의 예수상과 야경은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야경보다 훨씬 더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내호냉면은 함경남도 내호리에서 동춘면옥이라는 냉면집을 운영하던 이영순씨가 한국전쟁 때에 부산으로 피란 와서 1953년 딸 정한금씨와 함께 우암동에 내호냉면을 개업했습니다

내호냉면이라는 상호는 고향 내호리를 그리워하는 마음에서 고향의 이름을 딴 것이라 합니다. 내호냉면 내부 벽에는 손으로 그린 내호리 지도가 걸려 있는데 고향과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한국전쟁 당시에는 냉면의 원재료인 메밀과 고구마 전분을 구하기가 어려웠습니다미국의 원조 물품 중에 밀가루가 많았고메밀가루에 밀가루를 섞어 만들기 시작한 것이 지금의 밀면의 시초가 되었습니다다른 지역에서도 밀면을 향토 음식으로 말하곤 하지만산의 밀면에는 피란민의 애환이 담긴 음식이라서 더욱 의미가 있는 밀면이 아닐까요?


소막마을을 둘러보고, 이야기가 있는 밀면까지 먹는다면 특별한 소막마을로 기억될 것입니다.



 

2018년 등록문화재 715호로 지정된 부산 우암동 소막마을은 해방 후와 한국전쟁그리고 산업화 시대를 거치면서 여러 형태로 변화된 집들의 모습이 남아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수탈을 위한 항구로피란민들의 임시거처로 근현대사의 아픔을 담고 있는 우암동 소막마을을 보면서 도시재생과 마을 보존. 따로가 아니라 다 같이 함께 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지금까지 부산장노년일자리지원센터 부산근대문화자산 활성화사업단 알리미였습니다. 다음 포스팅에서 다시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