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보조메뉴바로가기 대메뉴 바로가기

바로가기

상담문의

부산근대문화활성화사업단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스토리
프린트

부산근대문화활성화사업단 게시판 입니다.

<부산근대문화자산활성화사업단> 과거를 기억하며 내일을 꿈꾼다, 아미동 비석 피란주거지

포토갤러리 게시판 읽기
작성일 2022-09-12 조회 889


과거를 기억하며 내일을 꿈꾼다,  아미동 비석 피란주거지




안녕하세요? 장노년일자리지원센터 부산근대문화자산 활성화사업단입니다. 


오늘 소개할 곳은 피란수도 세계문화유산 등재 추진유산 중 하나인 아미동 비석 피란주거지를 소개할까 합니다. 


 

아미동 비석 피란주거지의 묘지 위의 집



비석 피란주거지가 있는 서구 아미동은 아미산 자락에 있습니다. 


아미동의 명칭은 움집을 말하는 '애막'이라는 옛말이 변하여 한자로 아미(峨嵋)가 되었다고도 하고, 이곳에 반월형(半月形)의 토성(土城)이 있었는데, 이것을 아미월(峨嵋月)이라고 부른 데서 아미골이라는 이름이 생겼다고도 합니다. 


   

  비석 피란주거지 (아미동 비석문화마을)



일제강점기 복병산에 있던 일본인들의 공동묘지가 서구 아미동 비석 피란주거지로 옮겨오게 되었대요. 


한국전쟁과 피란 당시 판자촌 철거정책으로 산으로 밀려온 사람들이 2~3평의 일본인 묘지 위에 묘지 모양 그대로 집을 짓고 살아온 곳이 바로 비석 피란주거지(아미동 비석문화마을)입니다. 


비석 피란거주지의 상징인 묘지 위의 집 역시 일본인 묘지 위에 기초를 다지고, 흙과 나무로 벽을 만들고, 나무와, 루핑, 천막, 슬레이트, 판넬 등으로 지붕을 얹었습니다. 상상이 되시나요? 


백문이 불여일견. 보시면 정말 깜짝 놀라실 겁니다!! 


   

비석 피란주거지의 비석 위의 집



일제강점기 이후에 아미동 사람들은 한국전쟁으로 인해 절박함에 묘지라는 두려움을 모른 척하며 거처를 이루고 살아왔습니다. 


지금도 가스통이나 쓰레기통 등 시설물의 받침대로, 담으로 사용된 비석 등 비석 피란주거지 곳곳에서 비석과 상석 등 일본인 무덤의 흔적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인 공동묘지 위에 한국전쟁 피난민들이 정착하면서 형성돼, 피난민들의 생활상이 담겨 있습니다. 



   

비석 피란주거지에는 아직 곳곳에 비석의 흔적이 남아있다.



부산시 서구청이 다소 침울했던 아미동 비석 피란주거지 입구의 빈집 9개 동을 활용해서 피란생활박물관을 조성했습니다. 


비석 피란주거지의 시작, 석이삼촌방, 봉제공간, 주방, 비석상회, 비석사진관 등 7가지 테마로 귀엽고, 예쁘게 만들었습니다. 


피란생활박물관에 등장하는 ‘석이’는 비석마을의 ‘석’에서, ‘미아’는 아미동의 ‘미’에서 따온 이름입니다. 


<피란상회>에는 쫀드기, 아폴로, 사이다 등 피란 시절 구멍가게에서 팔았던 추억의 물건들이 있고, <석이삼촌방>에는 좀 잘 사는 삼촌방에 정말 있었을 것 같은 물건들이 가득합니다. 


물동이와 놋쇠 요강은 마음이 찡하면서도 신기합니다. 


   

아미동 비석 피란주거지지의 피란생활박물관



아미동 비석 피란주거지의 석이와 미아가 안내하는 7개 테마 공간은 부산시민은 물론이고 부산을 찾아온 관광객이 많이 찾는 랜드마크입니다. 


죽은 자의 공간이었던 비석 피란주거지가 피란생활박물관으로 멋지게 변신하여 이제는 피란 시절의 고단했던 삶뿐만 아니라 역사를 기억하는 공간이 되었습니다. 


너무나도 길었던 한국전쟁과 그 속에 녹아 있는 피란민들의 삶을 우리 모두 꼭 기억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