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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포 개항 안용복 기념 문화관
60세 이상 시니어 해설사 일자리 창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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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8-12-01 조회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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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세 이상 시니어 일자리 창출


60세 이상 시니어 해설사 일자리 창출하다.


 부산포 개항가도, 좌천 역사골목, 메견시 목사 기념비, 정공단, 왕길지 기념관, 부산진 일신여학교, 부산진교회, 안용복 기념 부산포 개항 문화관, 경사형 엘리베이터, 증산 왜성, 증산공원까지 약 2km 거리의 투어 코스 안에있는 안용복 기념 부산포 개항 문화관은 관광객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고 있다.

 부산 지하철 1호선 좌천역 3번 출구와 5번 출구로 올라오면 좌천 가구거리가 이어진다. 이곳 가구거리가 형성된 시기는 한국전쟁 이후 가구 제작 기술을 가진 피난민들이 내려와 이곳에서 각종 가구를 만들기 시작하여 형성되었다. 1960~70년대에는 가구산업이 호황을 누릴 때였는데 200여 개의 가구공장과 점포들이 있었고 삼성극장, 삼일극장, 보림극장 등 극장들이 즐비하여 이 거리는 사람들이 즐겨 찾는 거리이기도 했다. 봉생병원이 있는 곳부터 가구거리가 이어졌다고 한다. 가정용 가구, 전통칠기, 수입가구 가격도 천차만별이라 사람들은 주머니 사정에 맞게 가구를 구매했고 1954년 이후는 주로 데크 제품의 가구, 62년부터 포마이카 가구, 특히 60년대는 옷장이나 찬장을 찾는 사람이 대부분 이었다. 자개 골목은 봉생병원 입구에서 수정산터널 입구까지의 뒷골목에 밀집해 부산 칠기공예의 밀집 역할을 하였다.

 장롱 거리 범일동 자개를 갈고 닦는 거리와 좌천동이 함께하여 가구거리가 되었다. 70년대는 나전칠기가 인기가 있어 가내 수공업식의 자개 가공을 하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 1975년에는 제작소가 70여 곳으로 늘어났고 판매업소 30여 곳 가공업소 20여 곳 등 약 50여 곳이었다. 서울의 왕십리를 제외하고 남부지방에서 최대 규모의 자개 가구 공급지였다. 80년대 양 가구 수입으로 쇠퇴의 길을 걷다가 IMF 사태가 와서 건설 경기가 점점 쇠락해져 지금은 그 번성하던 가구공장과 점포들이 현저히 줄어들었지만 100여 개의 점포는 여전히 가구거리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가구 골목 사이로 접어들면 동구 전역의 스토리 골목이 이어진다. 동구 출신 위인들의 캐리커처가 벽면에 새겨져 있다. 일제강점기 호주선교사 매견시 목사와 임진왜란 첫 번째 전투인 부산진성을 수호하시다가 돌아가신 정발 장군, 독립운동가 박재혁 최천택 의사, 일신여학교, 부산부청 등 타일 벽화를 꾸며놓았다.

                              


스토리 골목


 매견시 목사의 본명은 매켄지로 1910년 호주 장로교 선교사로 우리나라에 왔다. 선교와 교육 의료 활발한 봉사 활동을 시작 특히 그는 기후의 영향으로 나환자가 많던 부산에서 20년간 환자들을 위해 헌신했으며(1865-1956) 매견시 목사 부인인 캘리는 부산진을 중심으로 여성을 위한 주일학교와 성경학교를 열어 교회 여성 지도자들을 교육하는 일에 내조하였으며 일신여학교를 설립하는데 대표역을 맡기도 했다.

 현재 동래여자고등학교의 전신인 일신여학교는 부산, 경남지역의 최초의 신여성교육기관이자 1919년 부산, 경남지역에서 최초 3.1운동이 일어난 독립운동의 산실로 그 역사적 교육적 가치가 깊다. 동구의 독립운동가 박순천 여사 박차정 여사를 배출하였으며 200352일 부산시 기념물 제55호로 지정되었다.

 부산포 개항 안용복 기념 문화관은 독도 문제가 다시 불거진 현재 더욱 높이 평가되는 일이다. 일본이 지금도 독도는 일본 땅이라고 억지 주장을 하고 있는데 독도는 우리나라 땅 이라고 민간인으로서 강력히 항의한 독도지킴이 안용복 장군에 대한 업적과 활동상을 볼 수 있는 전시공간이다.

 

안용복 기념관 내부


 안용복 기념관 외부


 그러면 안용복 장군은 어떤 분일까? 부산 동구 좌천동 (현 매축지 마을) 출신으로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 나라에 대한 은혜를 보답해야 한다는 엄한 교육을 받으며 자랐고 민간인이었지만 독도는 우리나라 고유영토로 인식하고 이를 지켜낸 인물이자 우리에게 영토 문제의 중요성을 인식시킨 동구의 역사적인 인물이며 독도 이야기를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안용복 장군의 생가는 동구 범 5동 매축지 마을에 생가가 있다. 그래서 동구청은 이곳에 안용복 문화관을 만들어 독도가 우리 땅임을 그토록 외친 안용복 장군을 되새기고 있다. 이곳은 삼성희망 네트워크라는 재단에서 60세 이상 시니어 일자리 창출로 마을해설사 양성 교육을 하여 현재 20여 명의 해설사를 양성하여 10시부터 6시까지 하루 3시간씩 교대근무로 이곳을 찾는 탐방객들에게 투어도 진행하며 멋진 해설도 곁들여 해주신다. 또한, 이곳을 찾는 학생들에게 소정의 체험비를 받고 체험행사도 진행하고 있다. 체험내용은 안용복 장군 도일선(渡日船) 종이모형 만들기, 부산포 개항 가도 캘러링북 만들기, 석고 방향제 만들기가 있다.

 안용복 문화관에서 시니어 해설사 선생님들 부산의 유래가 되기도 하는 증산과 증산 왜성, 임진왜란의 첫 격전지 부산진성을 수호하시다가 돌아가신 정발 장군 일명 흑이 장군과 군, 관민들의 이야기를 말씀해 주시는데 들으면 마음이 숙연해진다. 매축지 마을도 훤히 보이는 전망대에서 안용복 장군의 생가를 찾아본 후 안용복 장군이 타고 갔던 배를 재현해놓은 도일선과 바로 눈앞에는 산으로 올라가는 경사형 엘리베이터가 움직이는 게 보인다.

 이 엘리베이터는 산복도로 주민들에게 편리함을 주기 위해 만들었는데 지금은 명소가 되어 탐방객들이 즐겨 찾는 곳이 되었다. 그리고 이곳은 행정자치부 주관 행정 생산성 향상부문에서 장관상을 받기도 했다.

추가로 설명하자면 부산포 개항 가도 조성사업의 하나로 기존의 오래된 계단을 허물고 주거지역에선 부산지역 최초로 설치된 엘리베이터이다. 안전사고에 대비해 삼중 안전장치가 되어있다.

                         


경사형 엘리베이터

  

 부산이라는 지명이 유래된 증산, 부산진성이 있던 곳이자 일본인들은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새로 쌓은 왜성이 있는 증산, 그리고 안용복 장군 문화관 부산포 역사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좌천동 증산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산복도로 구비 누비 약 30여 킬로미터 속에 부산의 어제와 오늘이 고스란히 녹아 있기도 하다. 부산항으로 이어주는 삶의 길이며 계단의 길에 기자는 오래도록 바다를 바라보며 멈춰서 있다.

 원도심 동구는 부산의 종가 삶의 애환이 묻어나는 곳, 역사적인 장소 임진왜란 첫 전투가 일어난 곳, 부산진성이 있던 자리 부산포 개항 안용복 기념관이 있는 곳이다. 역사적인 이곳에서 선조들의 업적들을 하나라도 더 해설해주시려는 20여 분의 시니어 해설사님의 의미 있고 열정적인 해설에 박수를 보낸다


 


송명옥, 편도욱 기자  wndhks20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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