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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태껏 놓지 못하고 있다

고객 소리함 게시판 읽기
작성일 2017-12-03 조회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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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태껏 놓지 못하고 있다.


   부산광역시 교육청 홈페이지를 방문하면 교직원 인력채용이 있다. 학기 중에도 결원된 교원을 보충 모집하지만 방학이나 학기가 바뀔 무렵에는 바짝 신경을 세우고 매일매일 들려야 한다. 겨울 방학이 되려면 한참이나 남았는데 솔빛학교에서 겨울방학 중 방과후 교사를 모집한다는 공고가 떴다. 마감을 50분쯤 남긴 상태라 서류를 준비하고 직접 들고 학교까지 가려면 당연히 시간이 모자란다. 급한 김에 무턱대고 전화해서 담당선생님께 사정이 이러한데 편의를 봐주십사고 부탁했다. 다행히 퇴근 전까지만 오시면 된다고 선처해 주신다. 연거푸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후다닥 서류를 준비해 눈썹을 휘날리며 사상구에 있는 솔빛학교로 내달렸다. 마침 점자도서관 가는 길목에 학교가 위치해 있어 헤매지 않고 쉽게 찾아갈 수 있었다. 인상 좋은 남자 선생님께 서류를 접수시키고 면접일자는 따로 연락을 드리겠노라는 얘기를 듣고 돌아왔다.

 한달여가 지나도 소식이 없어 낙심하고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뜻밖에도 “선생님, 혹시 다른데 취업하셨습니까?”하고 솔빛학교에서 연락이 왔다. 그동안 학교에서 학예발표회 등의 행사로 너무 바빠 연락이 늦었다고 면접을 보잔다. 당일날 면접을 보러온 다양한 과목의 방과후 지원교사들을 보고 적잖이 당황했다. 우선 연령대가 이삼십대였고 내가 제일 나이가 많아 면접도 보기 전에 위축되어버려 차라리 맘 편히 담담하게 면접실로 들어섰다.

교장, 교감을 비롯해 여러명의 선생님들이 실기를 해보라신다. 아무 것도 준비해가지 않아 황당했지만(사전에 별도의 지시가 없었으므로) 도서실에 있는 동화책을 한권 달라해서 평소대로 시범을 보였다. 인사를 하고 나오면서 아, 망했다 다른 지원자들은 다 준비했겠구나, 접수시킬 때 헐레벌떡했던 순간들이 아쉽다는 생각이 확 들었다. 그 인상 좋은 선생님께 “다른 좋은 선생님들이 많으셔서 어렵겠네요.”하소 슬며시 운을 떼어보니 "선생님 스펙이 너무 좋으시던데요  저희들은 연락이 늦어 다른데로 가신줄 알았습니다 "하고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신다. 이렇게 해서 솔빛학교 겨울방학 중 프로그램 구연동화 3주간의 수업이 시작되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솔빛학교는 장애우 특별학교라는 정보 외에는 아무 지식이 없는 상태라 일반 학교와 별반 다를 바 없는 수업준비를 하고 학교에 갔다. 교사 출석부에 표기를 하고 담당 선생님께서 무엇보다도 학생들의 안전이 제일 중요하다고 진지하게 당부하신다. 배정된 교실에 먼저 가서 기다리니 동화구연반 학생들이 하나 둘 입실한다. 모두 8명의 학생이 우리반이다. 이중에 네명은 휠체어에 묶여있다. 몸을 가누지 못해 고정해 놓아야 넘어지지 않는다. 보호교사의 도움없이는 스스로 화장실도 다녀올 수가 없다. 수업 도중에도 수시로 화장실을 들락거리고 심지어 매트에 뉘여 기저귀를 갈아주어야 하는 상황도 발생한다. 보조교사 혼자 힘으로는 어려워 같이 끙끙대며 그 작업을 한다. 수업이 끝나면 보호자가 데리러 오는 학생도 있지만 대부분 학교 특수차량으로 이동한다. 휠체어를 밀어 차량에 탑승시켜 하교까지 무사히 마쳐야 수업이 완전히 끝난다.



    첫 시간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로 소통이 불가능한 아이들을 대하고 황당하고 막막해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대성통곡을 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겠다는 좌절과 낭패감으로 혼돈스러운 첫 수업이었다. 물론 준비해간 수업내용도 다 무용지물이었다. 일단 정상적이지는 않지만 대화가 되는 학생 두명(말하자면 발성이 되는 학생)을 대상으로 다시 교안을 작성했다. 조음기관을 풀어주고 발성을 하는 방법부터 시작해서 자음과 모음을 하나하나 발음시키는 과정을 반복했다. 제대로 된 발음은 아니지만 뒤틀린 몸짓으로 소리를 내려고 안간힘을 쓴다. 3주간 정해진 시간이라 이미 제출했던 수업계획서대로 진도도 나가야 했다. 매일매일 동일한 내용의 수업을 일지에 적기도 난처한 일이라......

 어느 정도 인지 능력은 있는 것 같아 쉬운 동화부터 들려주었다. 처음에는 집중이 잘 안되는 것 같았는데 나중에는 다른거 새로운 동화를 들려달란다. 그래서 제일 어리지만 특정한 발음(ㄹ 발음) 외에는 무난하게 말이 되는 학생을 대상으로 아주 짧은 동화를 시켜보았다. 한줄 읽어주고 따라하기를 반복해서 마지막 수업 시간에는 80% 정도를 혼자서 해내게 되었다. 손가락을 이용한 보이는 동화, 앞치마를 활용한 동화 등 각종 종류의 동화도 그들이 할 수는 없지만 보여주었다. 무어라도 해주어야 하겠기에...  

3주동안 뭘 대단하게 이룬 건 없지만 손잡고 눈 맞추며 이름 불러주면 뒤틀린 몸짓으로 나를 반겨준다. 세월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그 아이들을 생각하면 먹먹하고 심란하다.

여태껏 솔빛학교 동화구연반 아이들을 놓지 못하고 있다.

아무 것도 어쩔 수 없음에도.......

 

이순leesoon106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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