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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질녘, 어느 천사의 결혼식

고객 소리함 게시판 읽기
작성일 2017-11-23 조회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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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만큼 밥 먹고 살았어도!

-해질녘, 어느 천사의 결혼식

    

 요즘의 결혼식 모습이 참으로 다양하다. 베이비부머인 기자에겐 때론 황당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물속에서도 하고, 보리밭에서도 하고, 심지어는 웨딩드레스를 입고 공중에서 식장으로 내려오기도 한다. 그렇게 유별난 결혼식들이 많지만 한번도 직접 참석해 보지는 못했었는데 얼마 전 아주 감동적인 결혼식에 다녀왔다. 해질녘에 올린 ‘천사의 결혼식’이었다.



 신부의 혼주는 필자와 종씨로, 베이비부머 세대의 대표 주자라 불릴 만큼 유명한 58년생 개띠다. 일가 종친이다 보니 가족관계와 생활상 정도는 대충 알고 지내는 사이다. ‘둘도 많다, 하나만 낳아 잘 키우자’는 슬로건이 한창이던 시절을 살아왔기에 여태껏 슬하에 아들 하나만 있고 딸은 없는 것으로 알고 지냈는데 난데없이 딸 결혼식을 한단다. 그것도 저녁나절에….


 기업가도 아닌 학교 선생의 경제력에 무슨 디너파티를 할 형편도 아닐 텐데 싶었으나 신랑 이름이 외국인인걸 보니 국제결혼식이라 그런가 하는 의아한 마음을 가지고 갔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식장 입구 분위기부터가 예사 결혼식과는 달라 보였다.


 결혼식장인 듯 아닌 듯 그냥 연회장 같기도 하고, 신랑신부 입장부터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두 사람이 손을 잡고 앞장서 들어오더니 뒤이어 엄마 아빠 아들 세 가족이 손을 잡고 입장했다. 신랑은 덩치가 우람하게 잘생긴 미국인이었다. 그리고는 주례사 대신 혼주인 아빠가 인사말을 하는데 결혼 당사자들은 우리말을 못 알아듣는다고 통역을 해가며 인사말을 이어갔다.

 혼주의 긴 얘길 요약하자면 이렇다.
 “30년 만에 딸이 생겼습니다. 아니 찾아 왔습니다. 태어나자마자 하늘나라로 간 딸이 천사가 되어 얼마 전 우리를 찾아 온 것 입니다.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에 세상에 이런 일이 있나 싶어 믿어지지 않겠지만 이렇게 엄연한 현실이 되어 여러분을 모시고 결혼식을 올리고 있습니다. 이 결혼식은 단지 딸아이만의 결혼식이 아니라 우리 가족 모두의 결혼식 입니다. 저를 알고 계신 분들께 어찌된 경위인지를 말씀 드리고 제 딸을 소개 시키고자 모신 자리입니다.
  지금 30살이 된 이 아이는 제가 교사가 되기 전에 울산의 조그만 공장을 다니며 아주 어렵게 살던 때 태어났습니다. 아이가 태어나던 날 늦게까지 일을 하고 부산의 병원에서 산고를 겪고 있는 아내에게로 트럭을 몰고 급하게 달려가다가 그만 큰 교통사고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기술계 고등학교 선생이 되어 밥술께나 먹지만 그 때는 조그만 공장에서 기름땀을 흘려가며 밤낮으로 일해야만 겨우 생계가 유지되던 때라 아내가 출산을 하는데도 장모님께만 맡겨 놓고 있다가 겨우 틈을 내어 황급히 달려가다 보니 사고가 나고 말았습니다. 사고 수습을 대충하고 다음 날 아내가 있는 병원에 갔더니 엎친 데 덮친다고 아내도 순산을 못하고, 아기를 하늘나라 천사가 데려갔다는 것입니다. 아픔과 슬픔이 많았지만 하늘의 뜻이라 여기며 아기를 잊고 열심히 살아오면서 30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난데없이 하늘나라로 갔다던 아이가 나타났습니다, 여러 경로를 거쳐  묻고 물어 나를 찾아온 것입니다. ‘나를 낳은 부모가 어떤 사람인지? 왜 나를 버렸는지?’ 알고 싶어 애타게 찾았답니다. 얼마나 한이 맺히고 원망스러웠을까 느껴지는 말이었습니다. 딸아이의 출생을 확인하는 자리에서 곧 구순을 눈앞에 둔 장모님이 손녀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시며 말씀을 하십니다. 아니 용서를 비는 자백을 하시는 겁니다.
 ‘변변찮은 사위 살림살이에 연약한 내 딸이 고생하며 사는 게 안타깝고 가슴 아파 죽을 지경인데 고통 끝에 출산한 애기마저 장애가 있다하니 이 일을 어찌하나 싶어 딸자식의 앞날을 위하고 애기 치료를 바라는 마음에 아무도 곁에 없고 내막을 아는 사람 없는 순간이라 바로 미국으로 입양을 보내는 절차를 밟고는 사산이라고 산모와 가족을 속였다. 그 때는 그게 최선인 것 같아 그랬는데 미안하다. 지금만큼만 밥 먹고 살았어도 그런 일이 없었을 텐데 너무 힘들고 어렵게 사는 모습이 안타까워 그랬다. 용서해 다오’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참으로 드라마 같은 기가 막힌 이야기가 내게 일어났습니다.
 자초지종 사연이 밝혀지고 하늘나라에서 온 딸아이가 지난날의 모두를 용서 하면서 비로소 우리가족은 30년만에 새로운 새 출발을 하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미국에서 훌륭히 자라 의사가 된 딸아이와 그녀의 인생 동반자인 사위 둘의 결혼식일 뿐만 아니라 우리가족 모두가 새롭게 시작하는 결혼식입니다. 이미 흘러간 30년의 아픈 세월을 보상받는 행복한 가족이 되도록 지난 날 보다 더 열심히 사는 가장이 되겠습니다.” 



 같은 세대를 살아 온 사람으로서 가슴 뭉클하고 눈물이 핑 돌았다. 곁에 있던 아내도 같은 반응을 보였다. 우리도 첫아이가 태어날 때 비슷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가장이라는 사람은 일터에 있고 아내는 홀로 산고를 견디다 못해 겨우 친정엄마 도움을 받아야 했던 터다. 베이비부머 대부분이 아마 비슷한 상황이었으리라.


 ‘지금만큼만 밥 먹고 살았어도…’라는 혼주 장모님의 말이 내게는 정말 실감이 나는 말이건만 요즘의 젊은 분들은 이해를 할 수 있으려나 모르겠다. ‘1인당 국민소득이 2만7,000 달러를 넘어 2019년이면 3만 달러의 선진국에 들어선다는 이 부유한 나라에서 어찌 이런 일이 있었단 말인가?’ 싶겠지만 우리는 그런 아픔을 겪는 시절을 살아 왔다. 어려운 시기에 태어나 굶주림과 고통을 견디며 어떻든 절대 가난하게 살지 않겠다고 악착같이 살다 보니 이러한 생이별도 있었던 것이다.


 오늘날의 우리는 부(富)가 있고 자긍심도 높은 살기 좋은 나라가 되었지만 그만한 희생과 아픔이 있었기에 만들어졌다는 걸 ‘에코부머(베이비붐 세대의 자녀세대)’ 세대들이 알아주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에코부머 세대들도 불안한 고용과 저출산 현상의 사회문제를 겪고 있지만 춥고 배고픈 가난으로 인한 이런 슬픈 일은 다시는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되찾은 천사와 함께 새출발하는 종친의 가족에게 30년에 30년을 곱한 행복의 보상이 있기를 기원하는 힘찬 박수를 보내며, 한편의 드라마를 보고 나오는 듯 한 기분으로 결혼식장을 나왔다.
조희제 기자 ccgyu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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