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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 뜨끈한 돼지국밥 한 그릇 하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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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7-11-05 조회 14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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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 뜨끈한 돼지국밥 한 그릇 하이소!

 

   어느덧 늦가을로 접어들었다. 거리에 찬 바람이 불면서 옷깃을 여며야 하는 계절이 성큼 다가왔다. 뭔가 따스하고 감칠 맛을 주는 음식이 그리워진다. 특히나 환절기에 약한 어르신들에겐 보양식이 필요한 시절. 부산에 딱 맞은 향토음식이 있다. 구수한 냄새만 맡아도 침이 절로 넘어가는 돼지국밥이 그 주인공이다!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따끈따끈한 국물, 그리고 속에 켜켜이 숨어있는 살코기들이 수저를 저을 때마다 국물위로 살짝살짝 모습을 드러낸다. 환상의 비주얼에 저절로 군침이 돌면서 식욕에 불을 당긴다. 푹 곤 사골국물과 맛난 돼지고기로 이뤄진 완벽한 슬로푸드이자 로컬푸드인 돼지국밥. 하지만 슬로푸드라기엔 너무 음식이 빨리 나온다. 주문을 넣은지 얼마 지나지 않아 기본 반찬과 함께 “국밥 대령이오” 한다. 기다리는 시간을 보더라도 맥도날드는 저리가라다. 그런 점에서 돼지국밥은 패스트푸드라 해도 무방하겠다. 슬로&패스트푸드, 국밥의 정체성을 찾아 서면 돼지국밥거리로 맛기행을 떠나보자.

위치는 부산의 심장, 서면 복개천 옆에 떡하니 버티고 선 서면시장 내. 지하철 1호선 지하상가(서면몰) 11번 출구에서 나와 좌회전, 50m 직진해서 다시 좌회전해 조금만 내려가면 국밥거리가 나온다. 쉽게 찾을 수 있다. 송정3대국밥을 비롯해 경주박가국밥, 포항돼지국밥, 수영본가돼지국밥, 그리고 밀양가산돼지국밥집 등 5곳이 일렬로 늘어서있다. 가게 앞 큰 솥에선 뽀얀 사골국물이 보글보글 끓어오르며 농염하게 익어간다(?). 뿌리치기 힘든 유혹이다.

이들 모두 맛집으로 유명세를 탄다. 그 중에서도 알아주는 송정3대국밥집을 찾았다. 주인장에게 국밥집 이름을 지은 연유를 물었더니 기장군 송정마을 출신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작고한 송갑순 할머니를 이어 70대 며느리 최병숙씨가 물려받았고, 지금은 최씨 아들 김기훈씨로 이어져 내려온 뼈대있는 돼지국밥집이라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집은 2012년 정부가 우리나라에서 제일 오래된 돼지국밥 한식당으로 공식 인증한 곳이기 때문.  1946년 시작했으니 벌써 70년이 훌쩍 넘었다. 연지시장에서 시작해 서면으로 옮아왔다고 하는데 정확한 시기는 최씨가 기억하지 못한다. “아이 넷을 기르느라 정신없을 때 시어머니가 갑자기 뇌출혈로 돌아가시는 바람에 식당을 맡게 되었어요. 하지만 늘 찾던 단골 손님들이 그간의 이야기를 해줘서 대략 알고 있습니다.


송정 3대 국밥집


    반세기전만 해도 돼지국밥 한그릇에 200원 하던 게 이제 6500원을 받고 있으니 30배가 뛴 셈이다. 서면시장은 한때 부산을 호령했던 전통시장이었다고 최씨는 설명한다. “부자들만 찾던 최고급시장이었어요. 부전시장도 못따라왔을 정도니까요. 어물전이 죽 늘어섰고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이질 않았죠.” 밤이 되면 서면시장은 노동자들이 술 한잔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세상이 됐다고 한다. 1970년대만 해도 주변에 진양화학 등 고무공장들이 많았던 시절이라 공장 근로자들이 삼삼오오 모여들던 아지트 역할을 했다고. “시어머니가 저울로 고기를 달아 썰어 파셨어요. 워낙 식성이 좋았고 수가 많았으니까요. 오죽 배가 고팠을까 하는 마음에 듬뿍 주셨어요. 외상 장부는 필수였습니다. 돈을 못받는 경우도 많았지만 시어머니는 개의치 않았어요. 손이 큰 분이셨죠. 새벽에는 피란민과 청소부들이 찾아왔는데 거의 돈이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돼지비계와 찬 밥 한덩어리 넣은 국밥, 막걸리 한 잔에 술값만 받으셨어요. 그걸 먹고 사람들이 하루를 견뎠다네요, 글쎄. 지지리도 못살던 시절이었어요. 우리 식당도 그런 어려움을 견뎌내며 잡초처럼 자라왔죠.구수한 국밥 냄새를 맡으며 식당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오랜 연륜을 자랑하듯 탁자도 세월의 때가 많이 묻어 맨들맨들했다. 돼지국밥, 내장국밥, 순대국밥, 수육, 수육백반, 순대 등 6가지 메뉴 중 대표격인 돼지국밥을 시킨 뒤 사방으로 눈을 돌리니 각종 현란한 자랑거리들이 벽면을 장식하고 있다. 수차례 국내 및 해외언론에 소개됐고,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돼지국밥집이며, 웰빙 육수로 다이어트에도 도움이 된다 등등. 특히 압권은 전화번호 개통 시점을 통한 돼지국밥 역사전쟁(?). 송정3대국밥이 전화를 놓은 때가 1962. 부산직할시 승격 시점보다 1년 앞선다. 저마다 역사를 자랑하는 옆집들을 최소 10년 이상 앞서 돼지국밥 터줏대감이라는 거다. 여기저기서 연신 이마의 땀을 훔치며 보신하기에 바쁘다. 먹는 속도가 대단하다. “후르륵, 쩝쩝” 소리가 침샘을 자극한다. 한 숟가락 떠서 맛을 본다.


뜨끈한 돼지국밥


영화 변호인에서 돼지국밥을 맛있게 먹는 장면이 떠오른다. “캬! 바로 이기 부산맛 아이가.” 옆자리에서 소주 한 잔을 걸치고 국물 맛을 본 50대 손님이 구수한 표정을 지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든다. 뜨끈뜨끈한 국밥이 주문한지 1분 만에 차려졌다. 슬로푸드가 이렇게 빨리 나오니 어안이 벙벙할 정도. 먹음직한 국밥 뚝배기에 냉큼 수저를 넣고 휘휘 젓는다. 뽀얀 사골국물에 켜켜이 숨어있는 매력을 한시바삐 느끼고 싶다. 국물 속 다대기가 풀어지며 발갛게 변해간다. 여기에 양념된 정구지(부추)와 새우젓을 넣어 입맛을 맞춘다. 비위가 약한 사람들은 정구지를 부산말로 ‘쎄리’(듬뿍) 넣는게 좋다. 그래야 누린내를 잡을 수 있기 때문. 마지막으로 면사리(국수)를 말아 한 입 문다. 이제 국밥을 본격적으로 맛볼 시간. 숟가락에 떠올려지는 살코기들이 풍성하다. 숨어있는 건더기들이 화수분처럼 끊임없이 모습을 드러낸다. 돼지국밥을 ‘쉰내 나는 야성’이라 표현한 게 딱 맞다. 국물의 진함과 살코기의 연함이 어우러지며 빚어낸 멋진 조화를 어찌 형용할수 있을까. 고기는 비계만 잔뜩 붙어있는 것도 아니요, 그렇다고 팍팍한 살코기만 있는 것도 아니다. 씹히는 식감이 부드럽고 담백하다. 술술 잘도 넘어간다. 그리고 국물과 입안에서 합쳐지는 맛이란. 맛없고 퍽퍽한 뒷다리 고기를 쓰지 않는다. 벽면에 대문짝만하게 적어놨다. 여기서 취급하는 고기는 기름기를 없앤 앞다리와 삼겹, 향정살. 말라 비틀어진 수입 돼지고기는 저리가라다. 만약 그걸 쓴다면 돼지국밥에 대한 모독이 될 테니까. ‘웰빙’ 육수는 고기의 3배에 달하는 뼈를 가마솥에 넣고 10시간 이상 푹 고아야 나온다.  피를 빼낸 뒤 다시 삶아야 하고, 맛을 유지하기 위해 낮에도 뼈를 수시로 넣어야 하는 등 정성이 이만저만 아니다. 삶은 고기도 냉장보관하지 않고 끓는 육수에 계속 데쳐 낸다고. 돼지국밥은 이래서 완성되는 초슬로푸드다. 국밥 맛은 분명 세련된 건 아니다. 투박하고 거칠기도 하다. 오죽했으면 설렁탕을 포장도로(모범생), 돼지국밥을 비포장도로(반항아)에 비유했을까.

 돼지국밥은 부산 어디에서도 쉽게 맛볼 수 있는 대표적인 로컬푸드다. 시장바닥에서 일꾼들이 시간을 아끼려고 뚝딱 말아먹던 서민음식이었다. 한국전쟁 통에 부산에 피란온 이북민들이 돼지로 설렁탕을 하면서 비롯됐다는 돼지국밥은 그래서 더욱 정겹다. 경상도를 떠나 이제는 ‘사회 통합’음식이라 칭해도 무리가 아닐 듯. 값싸면서도 양이 푸짐하고, 영양도 듬뿍 담았으니 그야말로 웰빙 슬로푸드다. ‘무엇을 먹는지 알려다오. 그러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지’. 적확한 말이다. 돼지국밥엔 부산인들의 정체성이 고스란히 담겨있으니까.

이순 최원열 기자 choiwonyeo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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