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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부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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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우째 지내능교!”

고객 소리함 게시판 읽기
작성일 2017-09-27 조회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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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우째 지내능교!”

-제2인생과 봉사에 대한 담론


 “요새 우째 지내능교?”, “뭐 하는 거 있능교?”
 ‘베이비부머 세대’로 제2인생을 살고 있는 기자가 심심찮게 듣는 첫인사말이다. 정년퇴직을 한지 2년여 지났으니 꽤나 많이도 들은 것 같다. 얼마 전까지는 그냥 반갑고 정겨운 인사말로 여겼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다른 의미를 담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아 썩 달갑지가 않다. 괜한 자격지심 탓일까?

 요즘 기자가 만나는 사람 대부분이 비슷한 연령대의 베이비부머 세대다. 젊어서나 나이 들어 가면서나 살아가는 모양새는 크게 변한 게 없는 것 같은데 퇴직 이후를 ‘제2인생’이라 부르며 야단들인 사람들이다. ‘요즘 어찌 지내느냐?’고 묻는 이 사람들의 첫인사말에 담긴 함의를 기자가 느끼는 기준으로 살펴보면 크게 서너 분류로 나누어진다.



  첫째가 정년 또는 명퇴를 하고도 번듯한 새 일자리에 꽤나 높은 급여를 받는 자리의 명함을 쓱 내미는 분들이다. 마치 ‘나는 능력이 이 정도인데, 너는?’이라고 과시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둘째는 정년이 없는 분들, 하고 있는 일을 자본과 체력이 다하는 날까지 본인이 원하는 대로 계속 할 수 있는 분들이다. ‘너, 좋은 시절 다 갔지, 나는 아직 멀었다!’ 첫째와 비슷한 유형이다.
 셋째는 ‘손주나 돌보고 인생 즐기며 산다’고 말하지만 옛 직장 주변을 맴돌거나 일자리센터 등을 기웃거리며 명함 만들 거리 찾느라 애쓰는 기자와 비슷한 처지의 부류들, 바로 베이비부머 시대의 고민거리 당사자들이다. ‘우째 일자리 구했나? 니도 나처럼 노는구나!’ 동병상련을 느낀다.
 마지막으로 조기퇴직, 자녀문제 등으로 정말 일자리가 필요 하신 분들이 있다. ‘잘 지내나? 건강은?’ 조용히 안부만 묻지 별다른 말이 없다.

  왜 이리 인사말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말도 안 되는 뜻으로 유추하는 걸까? 흔히 베이비부머 세대는 태어나서부터 줄곧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왔다고  다들 얘기한다. 어린 시절에는 가난을 견뎌야 했고, 치열한 입시경쟁을 뚫어야 했고, 격동기 요동치는 사회변화에 적응해야 했으며, 가족을 돌보고, 자신의 부와 명예를 추구하고자 온갖 경쟁을 다 겪어내야 했던 사람들이다. 그러한 환경에서 치열하게 살아왔기에 세월이 흐르고 시대가 바뀌어도 이들의 의식과 생활습관은 크게 변하는 게 없는 것 같다. 나이가 들고, 시대 조류에 따라 사회에서 물러나야 하는 노인으로 분류되었으면 미련 없이 순순히 받아 들여야 하거늘, 아직도 정신적 신체적으로 젊음이 가득하다고 자신하며 노인이기를 거부한다. 그러다 보니 일자리를 갖지 못하면 왠지 뒤처지는 기분이 들고 불안해진다. 여태껏 살아오며 몸에 깊이 배있는 경쟁 심리와 습관을 쉬 떨쳐 버리지 못한 탓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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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태껏 삶의 현장을 숨 가쁜 경쟁 속에서 살아왔고 그러면서 항상 뒤처지기만 했다는 생각을 가진 기자는 퇴직 이후를 은근히 기대했었다. 제2인생이라기에 새로운 파라다이스가 펼쳐질 거라고 나름대로 부푼 마음이 있었던 것이다. 그동안 하지 못한 해외여행에, 골프, 각종 취미생활, 맛집 탐방, 새로운 도전 등 한껏 ‘폼’을 잡는 호사를 누릴 것이고, 그럴싸한 직함을 박은 새로운 직장의 명함을 내밀며 ‘나도 이런 능력이 있어!’라고 과시할 수 있을 것이라는 꿈을 그렸었다. 지난날의 열등감에 대한 보상을 받는 새 삶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졌다. ‘무엇이 제2인생인지?’,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노인상은 어떠한 건지?’를 고민해 보지 않은 막연한 과시욕의 망상이었다. 허욕의 꿈길을 헤매고 있던 어느 날 공무원연금공단 부산지부 소개로 한 봉사단체 활동에 참가하게 되었다. 복지관 등을 방문하여 노인들을 대상으로 봉사활동을 하는 퇴직자 단체였고, 노인들과 함께 어울려 놀아 주고, 건강지압 등 마사지를 해드리는 것이 활동내용이었다. 공단에서 실시하는 무료 학습 프로그램을 수강하려고 하니, 반드시 봉사활동을 1회 이상 해야만 한다는 조건이 붙어 어쩔 수 없이 봉사활동에 참여를 한 것이다. 거저 참여 실적만 하나 얻기 위해 형식적으로 동참했다가 봉사단원들의 마음가짐과 활동하는 모습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게 되었다.

 감명을 준 활동 서두의 대표 인사말이 이러했다. “여러 어르신들과 우리 다 같이 열심히 살았는데, 감사하게도 우리는 국가에서 연금이란 걸 받고 하늘로부터 건강이란 걸 받고 있기에 그만큼 더 열심히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어르신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일을 하고자 합니다.” 간략히 정리하면 ‘모두가 각자의 분야에서 열심히 살았다. 그런데 나는 감사하게도 연금이라는 급여를 받으니 그만큼 사회를 위해 일을 더 해야 한다. 그 일이 봉사활동이다’였다. 이보다 더 멋진 말이 어디 있을까! 지금도 짜릿한 전율과 감동을 느끼게 된다.



 그날 이후로 기자에게 많은 변화가 있었다. 폼잡는 호사거리는 물론 명함 만들려고 기웃거리던 일자리 찾기를 멈추었고, 제2의 인생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도 해보게 되었다. 봉사활동에 뜻이 있다고 연금공단 등에 요청해 ‘경로당 노인 한글 문해교실’, ‘전통시장 외국어 통역 도우미’, ‘일자리 창출 사회공헌 활동’ 등을 소개받아 활동하고 있다. 일주일이 언제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재미가 있다. 재밌고 즐겁다 보니 얼굴에 화색이 도는 모양이다. 만나는 사람들의 인사말이 달라진다. “요새 우째 지내능교?” 그 다음 말에 “좋은 일이 있나, 얼굴 좋네!”가 따라 온다. ‘암! 좋은 일이 많지!’ 속으로 혼잣말을 하며 씩 웃어준다. 이 웃음에는 많은 것이 내포되어 있지 않다. 그저 재미있고 즐거울 뿐이다. 잘 나가는 사람이 되려고 애쓰지 않아도 봉사활동을 하고 있으면 저절로 잘 나가는 취급을 받는다. 많은 급여를 받는 일을 욕심 내지 않아도 풍성하다는 여유가 생긴다. 습관적으로 지니고 있던 경쟁심이나 자만심 따위는 어디 갔는지 없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가득하다.

 기자 개인적인 얘기를 길게 한 이유는 봉사활동을 하면서 느낀 바를 능력자 분, 부와 권력을 가진 분, 명함 만들기에 신경 쓰고 계신 분 등 모두가 함께 생각해 보는 공동의 담론으로 주장해 보고 싶어서다.
 우리 부모님들과 선배 세대가 우리에게 가난을 물려주지 않으려고 헌신했듯이 우리 베이비부머 세대도 자식과 후배들에게 노인문제 고령화문제를 물려주지 않으려는 노력이 있어야 된다고 의식하고 있기에 다들 더 일하고, 더 돈을 벌려고 애를 쓴다고 생각한다.
 과연, 베이비부머 세대의 제2인생에는 ‘어떤 일자리를 만들어줘야 하는 걸까?’, ‘베이비부머 세대의 제2인생에서는 무슨 일을 해야 할까?’ 많은 담론이 있겠으나 기자는 앞서 언급한, 깊이 감명받았던 경험을 널리 전하고 싶다.  ‘우리 모두가 각자의 분야에서 열심히 살았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나는 연금이라는 급여를 받으니 그만큼 사회를 위해 일을 더 해야 한다. 그 일이 봉사활동이다’.


조희제기자 ccgyu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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