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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사람의 혼을 담은 수영사적 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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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9-09-11 조회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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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사람의 혼을 담은 수영사적 공원


 사람 사는 이야기가 있는 ‘부산시 휴먼북 도서관’의 휴먼북 취재활동을 하면서 수영사적공원에 대한 이야기를 휴먼북으로 가지진 분을 만나게 되었다. 수영사적공원 하면 필자의 어린시절의 소중한 추억을 담고 있는 곳이다. 공원이 있는 수영동에서 자라고 초등학교를 다녔기에 공원 이야기를 가지신 분을 만나니 꼭 옛 친구를 만난 듯한 대화의 시간이 되었다. 공원에서 푸조나무, 곰솔나무를 놀이기구 마냥 타고 내리며 놀았고, 동네 어른들이 펼치는 야류와 풍물놀이의 신명나는 장단에 어께를 들썩이며 자랐던 곳이기에 이런저런 공원사적에 대한 설명이 꼭 눈앞에 펼쳐져 있는 듯 추억을 떠올리게 했다. 오랫동안 무심하게 지내왔던 뿌리를 되돌아보는 소중한 기회가 되었던 것 같다.  

수영사적공원은 수영 로타리를 지나 수영 팔도시장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수영이란 말은 좌수영을 줄인 말에서 나왔는데 좌수영은 경상좌도수군절도사영을 줄인 말이다.

예전에 공원과 나란히 붙어 있던 수영초등학교가 ‘옛 좌수영 진영’이었고 그 역사를 알려주는 흔적들이 괘 많이 남아 있었는데 학교가 이전되고 지역개발과 도시화과정이 급속히 이루어 지면서 대부분 훼손되고 현재는 성의 일부인 공원만 남아 있는 것이다. 다행히도 공원으로 남은 부분은 그런대로 잘 보존되고 가꾸어져 부산 수영사람들의 혼이 담겨있는 조선시대 경상좌도수군절도사영이 있었던 곳임을 알려 주고 있다.

수영에는 ‘보리양식 지고 매 맞으러 간다’는 속담이 전해지고 있는데 이 민담은 조선시대 좌수영이 지금의 수영에 있을 때 죄를 지은 사람이 매를 맞기 위해 열흘 내지 보름치의 보리양식을 가지고 이곳에 와서는 매 맞는 차례를 기다렸다고 한다.
그러다가 매를 일찍 맞고 나면 보리양식이 남는데 남은 보리를 이곳에서 팔고 갔다고 하여 이 지역을 보리전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예전의 장터가 지금의 수영팔도시장으로 변모되어 있는데 아마 그 전신이 아닐까 싶다.


수영사적공원에는 25의용단을 비롯하여 안용복장군을 모신 사당, 할매당 등 수영사람들의 혼과 기개를 담고 있는 역사의 흔적들이 많이 전해지고 있다.
유성룡의 징비록에 의하면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경상좌수사 박홍은 적을 보니 그 군세가 너무 커서 감히 병사를 내지 못하고 성을 버리고 도망쳤다. 수영성에 침입한 왜군은 이곳에 주둔하며 7년간 부녀자와 주민을 약탈하였다. 이에 수영의 수군과 향민 스물다섯 사람이 죽음으로써 향토를 지켰지만 7년의 세월동안 그 모두는 죽음을 당하였다. 이들 스물다섯 의용의 공적이 알려진 것은 임란이 끝난 11년 뒤에 동래부사 이안눌에 의해 스물다섯 의용의 집에 의용이라는 팻말을 붙여 충절을 기렸다고 한다. 그 후 오한원 동래부사가 후손에게 부역을 면해주고 글을 지어 포상 장려 하였으며, 경상좌수사 장인식이 수영공원에 비를 세우고 의용단이라 이름하고 의용당을 지었다고 한다.

민초의 연약한 아낙으로서 임진왜란 때 왜병에게 항거한 송씨 할머니를 기리는 할매당의 제당도 수영사람의 혼을 기리는 하나의 유적이다.


독도를 침범한 일본을 물리친 안용복 장군을 모신 사당이 있다. 안용복 장군은 조선시대 숙종 때의 수영사람으로서 좌수영 수군의 능노군(노 젓는 병사)에 속해 있던 군졸로서 울릉도와 독도를 침략한 왜인들을 몰아내고 일본으로 건너가 에도막부로부터 우리 땅임을 확인하고 다시는 침범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받은 장군이다. 독도수호에 큰 업적을 세워 후세사람들에 의해 장군이란 칭호를 받으신 분이다. 아직도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망언을 일삼고 있는 일본을 이기려면 안용복 장군의 기상과 혼을 후손인 우리가 지키고 이어 나가야겠다.

수영사적공원의 정문역할을 하고 있는 아취형 남문에는 문 밖에 돌로 조각된 박견(조선개) 한쌍이 나란히 놓여 있다. 특이한 형태의 이 조각은 왜구의 침입을 경계하는 의미가 담겨있다고 한다.


남문을 들어서면 곰솔나무가 딱 버티고 서 있는데 천연기념물 제270호로 지정되어 있다. 조선수군을 수호하던 군신목(軍神木)으로 장수의 위엄과 기백이 세상을 굽어보며 서있는 당찬 모습이다. 공원에는 푸조나무가 웅장함을 자랑하며 보는 이의 마음을 시원하게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천연기념물 311호로 지정되어 있는 푸조나무는 지신목이라고 일컬어지고 있으며 할머니의 넋이 깃들어 있어 나무에서 떨어져도 다치는 일이 없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 때문이었을까? 어린시절 매달리고 뛰어내리고를 수없이 했건만 다친 기억이 없으니 수호목이 틀림없는 것 같다.

수영공원 안에 위치한 수영민속예술관은 수영에서 전승되고 있는 수영야류를 보존 연구하고 놀이마당에서 관광객을 위한 공연도 한다. 야류는 넓은 들판에서 행하여지는 놀이에 붙여진 이름인데 경상남도 내륙지방에서 행하여지던 오광대놀이가 바닷길을 따라 수영과 동래, 부산진까지 전래되었다고 한다. 수영야류는 양반에 대한 풍자를 아주 심도 있게 다루고 있으며 해학적 특징이 뛰어난 문화유산이다. 또한 당시의 시대적 민중 생활상을 엿볼 수 있게 하는 중요 사료이기도 하다. 다른 탈놀이보다 종교적 성격이 강하다고 한다. 산신제와 여러 가지 고사를 지냈으며 탈놀이에서도 사자춤이 있음이 이를 뒷받침한다. 사자는 본래부터 있지는 않았는데 수영 남쪽의 백산이 달아나는 사자의 형상이라 그 사자를 위로하기 위해 사자춤을 넣었다는 설도 있고, 왜적이 사자춤을 보고 매혹되어 일본으로 돌아가 흉내 낸 춤이 ‘월후사자무(越後獅子舞)’라는 주장도 있다. 지금은 백산의 사자는 완전히 달아나 버리고 없다고 해야 될 것 같다. 산을 잘라내고 깍아 아파트 단지로 만들어 산의 형세가 완전히 달라져 버렸으니 말이다.


금번의 휴먼북 취재활동을 통해 잊고 지내왔던 내 고장 수영의 문화유산의 소중함과 수영사람의 기상과 혼이 내게도 이어져오고 있다는데 자긍심을 느끼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던 것 같다.  
수영사적공원이 담고 있는 수영사람의 혼이 길이 보존되고 후손만대 이어져 나갈 수 있도록 문화유산 홍보에 앞장서려 한다.



조희제 기자 <ccgyu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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