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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는 나를 내려놓아야!

고객 소리함 게시판 읽기
작성일 2019-05-30 조회 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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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는 나를 내려놓아야!


    아직 5월인데 때 이른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날, 소위 ‘노가다’라고 부르는 건축현장 막일을 하러 갔다. 부산광역시 장노년일자리지원센터 ‘일자리 발굴단’ 활동을 통해 장노년 일자리를 찾아다니다 보니 건축현장에는 장노년 일자리가 제법 있긴 한데 일자리에 비해 일을 하고자 하는 사람은 귀하다는 말을 종종 듣게 되었다.

왜 그런지 어렴풋이 짐작이 되지만 정확히는 알지 못했기에 한 번 경험을 해보려던 참에 건축업을 하고 있는 지인이 비교적 쉬운 일인데 일손이 부족하니 용돈벌이 삼아 한 번 해 보지 않겠냐는 권유가 있어 흔쾌히 승낙을 하고 건축현장으로 달려갔던 것이다.



  새벽 5시에 일어나 준비해둔 작업복을 챙기고 간단한 아침요기를 하고는 집을 나서 7시경에 공사현장에 도착을 했다. 12명의 인부가 컵라면으로 아침 요기를 한 후 바로 건물 외벽 단열재 부착 작업을 시작하는데, 총괄감독인 사장과 자재공급 반장을 제외한 8명의 경력자가 2인 1조로 편성되어 건축물 사방으로 작업영역이 배정되고, 나와 여성 1명이 기술자들 뒤를 수발하는 잡부로 작업을 하는 것이었다


초보에다 첫발을 디딘 탓에 무얼 해야 할지 몰라 어리버리 눈치만 보고 있는데, 반장이라는 덩치 큰 사람이 작업위치를 정해 주면서 해야 될 일을 지시했다. 전동 도르래를 이용해 세멘 몰타르가 담긴 통을 1층에서 5층으로 올려주고, 다시 빈통을 내려 받는 일이었다. 전동 도르래 작동 버턴만 눌렸다 놓았다 하는 일이라 ‘뭐 이른 것쯤이야 일도 아니지 일당 벌기 수월하구나!’ 싶었다.

그런데 그건 착각이었고, 금새 다른 일을 시켜대기 시작을 하는데 시킨 것 한 가지가 채 끝나기도 전에 다른 일로 불러대는가 하면 시켜놓고는 곧 취소했다가 또 다시 시키고 완전 정신혼란 대처불가 방식이다.


그래도 어찌 하겠는가 반장이 지시하는 것을...! 내가 초보라 동작이 느리고 제대로 못해 그렇겠지 여기고 최대한 해내려고 서둘러 움직였다. 정신없이 헤매고 있자니 반장은 마음에 안 들었던지 다른 위치로 작업을 바꿔주는데 5층 비계 위로 올라가라는 것이다.

어려서부터 고소공포증이 있는데다가 나이 들어 하체까지 부실한데 5층 비계 난간에 올라서라고 하니 눈앞이 캄캄해졌다. 그래도 일해 보겠다고 나와서는 나잇살이나 먹은 사람이 못한다는 말은 할 수가 없어 가슴을 졸이며 난간에 올라설 수밖에 없었다. 도르래를 타고 올라온 30kg이 넘는 몰타르 통을 들어다 나르자니 다리가 후들거리고 눈앞이 어찔어찔한 게 죽을 맛이었다. 한 두통도 힘든데 건물 사방을 돌아가며 여기저기서 통을 가져다 달라고 불러댄다.


평소에 흔히 듣던 ‘선생님!’ ‘사장님!’ 호칭은 어디가고 ‘어이!’ ‘아저씨!’ ‘이봐!’ 가 난무한다. 막일판에 무슨 점잖은 호칭이 필요하겠냐마는 듣기에 몹시 거북스럽고 기분이 언짢아지니 통이 더 무거워진다. 들어다 나르는 걸 두어 바퀴 하고 나니 온 몸이 나른하고 어께와 허리가 끊어질 듯 저려오는 게 후회가 막급인데 이젠 주변 자재정리와 청소를 시킨다.



작업할 단열재를 한 사람이 오른쪽으로 갖다 놓으라고 하면, 딴 사람은 왜 거기 놓느냐며 왼쪽으로 갖다 놓으라고 한다. 언제 나타났는지 멀리 있어 안 보이던 자가 불쑥 나타나 쓸데없는 일을 했다고 다시 제자리에 갖다 놓으라고 한다.


 성질대로 하자면 확 집어 던져 버리고 고함을 질러 야단이라도 치고 싶은데 그냥 피씩이 쓴웃음만 짓고 말았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지 하도 어이가 없어 저절로 쓴웃음이 나오고 고개가 숙여 졌다. 하고 있는 몰골은 낡은 츄리닝을 작업복이라고 입고 있는데다가 빌려 쓴 여성용 차양모자에 먼지 방지용 마스크로 얼굴을 덥고 색안경까지 썼으니 영락없는 모지랭이 초보 잡부 모습이다.


성능 좋은 작업화에 반듯한 작업복이라도 착용했더라면 사람 보는 시각이 달라졌을까 모를 일이다마는 지금의 형색은 그들의 눈에 아주 하찮은 존재로 보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술도 없고 힘이 모자라면 당연히 무시당하는 약육강식의 세계가 아닌가 맘을 달래가며 오늘 하루만 참자고 이를 악물고 견디는 하루였다.

먼지를 뒤집어쓰고 땀으로 범벅이 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가며  ‘이리도 힘든 일이니 일자리가 있어도 많은 사람들이 기피를 하는구나!’ 이게 답이라고 여겼다.



다음날 내게 일자리를 알선한 지인을 만나 어제 현장에서 겪은 일을 얘길 하니 빙그레 웃으며 진짜 정답을 알려 주었다.
“어제 함께 일을 한 10명은 수년간 건축현장을 삶의 터전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인데 오랜 경험으로 현장의 요령을 터득하고 자신들의 일자리를 스스로 만들고 지켜나가는 지혜를 가진 이들로 아무에게나 함께 일할 자리를 선뜻 내어주지 않습니다. 그들 나름의 방식과 의식에 녹아들고 동참할 수 있는가를 나름 충분히 다루어 보고 시험을 하고는 함께 끼워 줄 것인지, 스스로 포기하고 그만두도록 쫒아 낼 것인지를 알게 모르게 만들어 가는 갑질이 있습니다.”


 “어제의 일은 내가 미리 얘기를 해 놓지 않아 그런 모양이니 이해를 하십시오. 야단을 쳐 놓겠습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부끄러움에 몸 둘 바를 모를 지경이 되었다. 어제 현장에서 있었던 일련의 과정이 바로 그 시험이었던 것이다. 안타깝게도 나는 시험에 탈락하고 만 것이다.
 
 퇴직 후는 지난날의 모든 걸 내려놓고 새로운 제2인생을 산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지난날의 삶을 바탕에 깔고 생각하거나 행동을 해온 게 여실히 드러난 것이다. 장노년의 현실에서는 과거에 육두벼슬을 했거나 말거나 알아주지도 않고 쓸모도 없는데 은근히 기대를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 좋은 경험이었다.


“잡부일이 힘들어 못하는 게 아니라 나를 내려놓을 줄 몰라 일이 힘든 것이다. 일자리를 얻을려면 나를 내려놓을 줄 알아야겠다.”



조희제, 송명옥 기자 ccgyu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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