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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핵무기는 우리민족의 존망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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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8-09-10 조회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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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핵무기는 우리민족의 존망문제!

휴먼북 김양우, 22년 북한문제 전문가의 남북문제 해부

    

 올 들어 연이은 남북정상회담, 북미정상회담 등으로 통일이나 북한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특히 최근 금강산에서 남북이산가족 상봉까지 이어지면서 혹자는 벌써 통일에 대한 장밋빛 기대에 들떠 있는가 하면, 혹자는 부산에서 열차를 타고 평양~원산을 거쳐 러시아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타고 유럽으로 이어지는 여행을 그리기도 한다.

    

 그러나 과연 우리는 북한사회를 얼마나 알고 있을까? 우리 정부가 내놓고 있는 북한 핵무기관련 해법과 남북교류 방식에 문제점은 없는가? 싱가포르에서 전 세계인의 눈길을 사로잡았던 김정은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대통령의 북핵문제 협상이 제대로 굴러가긴 하는 걸까?

    

 결론적으로 우리 국민에게 행복한 기대감을 안겼던 남북정상회담의 성과는 아직 미진하고, 북한핵무기 처리와 관련된 북미 협상은 서로간의 팽팽한 기 싸움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지지부진한 상태다.

    

 물론 이달 18일부터 23일 간 평양에서 제3차 남북정상회담이 예정돼 있어 이 회담이 대추나무에 걸린 연줄처럼 꼬인 남북, 북미 간 문제해결에 새로운 돌파구가 될 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런 때 일수록 차분하게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와 남북의 평화적 통일방법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 형성,  북한사회에 대한 냉정한 이해 노력이 더욱 절실하지 않을까.

    

 이런 사람들에게 휴먼북-김양우(77)’를 일독하기를 권한다. 휴먼북-김양우는 대학 강단에서 22년 간 북한 문제에 대한 강의를 하고 있는, 부산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북한문제 전문가가 풀어나가는 북한사회의 이해와 통일에 대한 성찰을 다루고 있는 전문서적(?)이다.


    


서론-사람 김양우, 그는 누구인가?

 1941년 경남 통영에서 태어난 김양우는 언론인 출신이다. 19706월 국제신문에 입사, 정치 경제 사회부 기자를 거친 뒤 1980년 신군부의 독재체제에서 국제신문이 강제 폐간된 뒤 부산일보로 옮겨 주일특파원, 도쿄지사장, 정치, 경제, 해양수산부장을 맡았다. 그 뒤 1989년 국제신문이 복간되자 다시 국제신문으로 돌아가 정치, 경제, 사회부장, 편집부국장, 논설위원, 출판국장 등을 역임했다.

    

 언론인 김양우의 활약상은 화려하다. 1980518일 광주민주화 당시에는 한국기자로는 유일하게 국제신문 취재진을 이끌고 광주시내에 들어가 총탄이 난무하는 취재현장을 지켰다. 이때의 생생한 기록은 당시 신군부의 서슬 퍼런 언론검열 탓에 신문에 제대로 실리지는 못했다.이 기록은 세월이 한참 지난 1996<시민군, 계엄군>이라는 제목의 저서로 출간된다.

    

 그에게는 또한 몇 가지의 한국기자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1985년 일본특파원 시절 그는 한국기자로는 처음으로 남태평양 18개 섬을 소개하는 연재물을 부산일보에 게재했다. 우리나라에서는 호주 뉴질랜드를 제외하고는 남태평양 일대에 산재한 섬나라에 관한 정보가 거의 전무한 시절이다. 이때 취재 후일담은 아직도 부산언론계에서 회자되고 있다. 18개 섬들을 돌아보는데 한 섬에 이틀씩, 모두 36일간의 살인적인 스케줄을 짰다. 만약 한 섬에서 몇 시간만 지체해도 일주일 뒤에나 다음 스케줄을 진행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이 일정을 무리 없이 소화해냈다. 이 여행기는 1987<남태평양>이라는 책으로 엮어졌다. 몇 년이 지나 남태평양 쪽으로 가는 국내 여행객들에게 이 책은 필독서가 됐다.

    

 역시 부산일보 재직 때인 19881217일에는 중국을 거쳐 백두산에 올라 천지가 얼어붙은 사진을 한국신문 최초로 공개한 주인공이기도 하다. 이때 동행한 사진기자가 찍은 이 사진으로 한국기자상 사진기자상도 거머쥐었다.

    

 화려한 기자 경력에 이어 그는 대학 강단에 섰다. 국제신문 출판국장 시절인 1996년 그는 동서대학교 국제관계학부의 겸임교수로 위촉, ‘북한사회의 이해라는 과목으로 대학 강의를 시작했다. 2006년 정년을 맞아 겸임교수로는 퇴임했지만 지금까지 같은 대학 외래교수로 한반도 통일과 협력이라는 과목을 강의하고 있다. 강의하면서 그는 수업집중도를 높이기 위해 토론식 수업을 진행해 학생들로부터 깐깐한 교수라는 평을 얻기도 했다. 20년 넘게 북한사회의 이해를 위한 강의를 하는 동안 관련 자료를 수집, 연구하면서 그는 화려한 기자에서 북한전문가로 거듭났다.


    

본론-북한 전문가, 김양우

 언론인 김양우가 어떻게 해서 20년 넘게 대학에서 북한 문제를 강의하는 전문가가 됐을까? 부산일보 재직시절인 83년부터 88년까지 5년 간 그는 도쿄특파원으로 활동했다. 그가 일본에서 특파원으로 있을 때인 80년 중반 국내 유력일간지 한 곳에서 <김일성 사망>을 알리는 기사를 실었다. 당시 우리나라에서 북한의 정보를 제대로 접하기란 하늘에 별 따기였다. 당연히 북한 정보에 민감한, 그래서 상대적으로 정보가 많았던 일본특파원에게 사실여부확인 특명이 본사에서 떨어졌다. 이 때문에 도쿄 시내를 이리저리 뛰어다녔던 일이 북한과의 인연 첫발이었다. 물론 이 기사는 오보로 확인됐다.

    

 두 번째는1987121일 김만철 일가족 11명의 집단 탈북사건이었다. 김씨가 탄 배가 우리나라 동해안과 마주하고 있는 일본 서쪽 쓰루가 항에 입항했다. 이때 항구 안에 떠 있는 것을 취재하느라 온통 눈 천지였던 부둣가 여관에서 꼬박 사흘 밤낮을 대기했다. 일본경찰의 접근금지로 인터뷰는커녕 김씨 얼굴조차 보지 못한 채 전세 낸 통통배로 주위를 맴돌기만 했다. 서울에서 급파된 TV방송사 취재팀도 떠있는 배 사진 한 장으로 만족해야했던 사건이었다.

    

 이 경험을 하면서 그는 북한사회를 제대로 알리기 위한 뭔가가 필요하다는 기자적인 고민을 시작했다. 특히 백두산에 다녀온 뒤 불과 30m만 넘으면 북한갈 수 있는데도 그러지 못한 현실과 당시 북한에 대한 정보가 너무도 빈약한 탓에 온갖 추측이 난무하고, 북한에 대한 오해만 증폭시키는 국내 언론의 보도자세가 그의 의욕을 일깨웠다.

    

 가장 본질적인 문제는 역시 역사의 왜곡이었다. 가령 북한의 김정일이 왜 우리 민족의 시조는 단군이지만 중시조는 김일성 수령님이라는 말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해댔는지, 형식상 국가원수라는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김영남이 왜 우리 민족은 김일성 민족이고,우리 민족의 혈액형은 김일성 형이라는 말을 거침없이 내뱉었는지, 우리의 맨 정신으로는 정신병자로 치부해버릴 언행을 2,500만 북한 인민들은 과연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에 궁금증이 커져만 갔다.            

    

 특히 대학 강단에서 만난 학생들의 인식에서 그는 전율을 느끼게 된다. 일부 학생들이 강의 시간에 질문을 했다. “교수님, 북한 핵무기는 통일만 되면 우리 것 아닙니까, 그러면 북한이 핵을 고수하는 것이 좋은 일 아닌가요?” 게다가 우리나라 역사에 대한 인식마저도 너무 편향돼 있어 이대로 가다가는 정말 큰  일이다는 학자적 각성을 하게 된다. 그래서 그는 지난 2016<북한의 왜?>라는 저서를 세상에 내놨다.

 


   

결론-김양우의 북한핵무기 문제 및 통일에 대한 고찰

 “북한의 핵무기는 우리 민족의 존망이 걸린 문제라고 명쾌한 결론을 내리는 사람책 김양우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한 것은 미국이나 중국이나 일본을 겨냥한 것이 아니고 적화통일을 위한 것이니 만큼 쉽게 포기하려 들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한다. 그런데도 일부 젊은이는 물론 기성세대에서도 이같은 목소리가 나오는 현실이 무섭기만 하다고.

    

 그는 특히 우리 정부의 현실인식이나 남북대화 방식부터 문제라고 주장한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 이어 지금 문제인 정부도 북한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북의 김정은에게 끌려가면서 굴욕적인 대화를 이어가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그는 북한이 3대 세습 70여 년 동안 일관된 태도를 보이고 있는데도 우리는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혼선을 빚으며 북한에 끌려가고 있다고 꼬집는다. 그러면서 북미 정상회담에서 나온 공동성명도 지금 뜯어보면 완전한 실패작이라는 분석도 덧붙였다.

    

 “북한이 60년 동안 주민들을 굶겨 죽여 가며 매달린 것이 핵무기인데 쉽사리 포기할 수 있겠는가라고 전제하는 그는 북한 핵무기 문제를 제대로 푸는 방법은 먼저 북한이 몇 개의 핵탄두를 가지고 있는지, ICBM 등 미사일은 몇 개를 가지고 있는 지 상세하게 명시하도록 해 이를 완전히 없애는 절차를 밟아나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의 마지막 제언이다. “북한 핵무기는 우리민족의 존망이 걸린 문제인 만큼 모든 대화에 앞서 선결해야 과제입니다. 그러자면 미국과 보조를 맞춰 핵폐기를 확실히 담보해야 합니다. 아직까지 우리민족끼리등등의 나이브한 인식으로 북한과의 대화에 나서는 정부는 각성해야 하고, 국민들도 섣부른 장밋빛 남북교류나 통일론을 갖는 것을 자제해야 합니다.”

편도욱 송명옥기자 solripa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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