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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火)는 내되, 평화롭게 풀어야 한다

고객 소리함 게시판 읽기
작성일 2018-09-06 조회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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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내되, 평화롭게 풀어야 한다

 

대한민국 사회는 자유를 보장해준다. 모든 국민은 평등하다. 하지만 과연 그런가

우리는 이미 존엄하게 살 권리’, 다시 말해 길을 잃었다. ‘내로남불의 극단적 이기주의가 판치면서 우리의 

순수한 영혼은 빛을 감춘 지 오래고, ‘미투를 비롯한 사회 폭력이 난무하면서 나와 너를 갈라 놓는 

증오의 벽은 더욱 단단해진다. 설상가상으로 생활고까지 겹치면서 국민들의 가슴에 쌓여만 가는 화()는 

임계점을 향해 치닫고 있다. 거리에 나서 살려달라고 소리쳐 외쳐보지만 메아리에 불과한 이 세상

그 절박한 사정을 알아주지 않는다. 특히나 사회에서 은퇴한 베이부머들의 심정은 바싹 타들어간다.

 ‘우리가 함께 피땀 흘려 대한민국인데, 어쩌다 이렇게 됐나’. 이제 사회의 중심축에서 주변부로 밀려난 

이들에게 더 이상 힘이 남아 있지 않다. 그저 소주병을 들이키며 화를 낼 뿐.



'힐링(치유)의 스승' 틱낫한 스님은 인생의 화두로 화와 행복을 들었다. 스님이 제시한 해결책은 이 순간 

'깨어 있기'였다. 그게 나를 고요하게 하고, 화를 가라앉힐 수 있다는 거다. '껴안기' 명상과 고귀한 침묵이 

자유인으로 이끄는 길이라는 그의 잔잔한 음성이 천둥처럼 귓전을 울린다. 우리 마음 속에 분노와 오해

두려움이 없다면 증오와 폭력, 살인 같은 끔찍한 만행도 존재하지 않을 터이니.

, 만병과 고뇌의 근원이다. 스님이 말했다. 좋지 못한 에너지로 자비의 힘을 억제하는 것이라고.

자비를 태워버리는 불이라고. 그러면서 일상 삶에서 자비의 힘을 끄집어내 쓸 수 있는 방법이 바로 

깨어 있기라 했다. 그 필요충분 조건으로 경청과 자애를 들었다. 서로의 상처를 어루만지고 참회케 하는 것

평화를 기원하기에 앞서 내면의 자애로움을 일깨워야 한다는 틱낫한 스님의 명징한 가르침이 가슴 속을 파고 

들어온다.

그런데 스님 말씀에는 또 다른 화두가 들어있다. 화는 동시에 몸과 마음을 시원하게 하는 물과 같다는 것이다

곰곰 생각해보니 머릿속이 환해진다. 화를 풀지 못하면 화병이 생기듯이, 제대로 풀면 명약 중의 명약이 된다는 

뜻이 아닌가. 화의 씨앗을 건드리고 있는 원인을 없앤다면 말이다.

그렇다. 화는 증오나 폭력과는 차원이 다르다. 삶에서 자연스럽게 작동하는 감정이다

그것은 내면에서 압력밸브를 열어 부정적 에너지를 방출하는 조절장치다. 그러니 화를 꾹 눌러 참는 건 결코 

이롭지 못하다. 부정적 요소를 비워주는 고마운 존재이자 위대한 치유자가 바로 화라 하겠다. 문제는 화를 

푸는 게 아니라 표현하는 방식이다. 화를 평화롭고 긍정적으로 풀 것이냐, 아니면 비이성적으로 폭발시킬 

것이냐. 그 선택권은 전적으로 우리에게 있다.



화는 최고의 기쁨이 될 원천과 최악의 고통이 될 지옥이라는 이중성을 지니고 있다. 인류 역사를 보면 화가 

아무래도 후자 쪽으로 쏠린 듯하다. 자연 현상을 보고 분노하는 신으로 해석한 아득한 선조들은 야만적인 

의식들을 만들어냈고, 신화로 내려왔다. 증오와 폭력의 유전자(DNA)가 대물림되면서 우리의 사고방식도 이에 

의존하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이론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화를 평화롭게 풀지 못해 야만이 설치는 살벌한 세상이다. 끊임없이 상대에게 상처를 입히는 이것들이 모두 

자비를 태우는 ()’이 아니고 무엇이랴.

화를 분출시키는 일은 대단히 중요하다. 하지만 화풀기는 행동에 대한 결과를 인식하는 것이어야 한다

눈앞의 만족을 위해 상대에게 상처를 주는 건 야만사회의 전형이다. ‘매순간 깨어있으라는 틱낫한 스님의 

가르침을 새겨들어야 할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이순 최원열 기자 choiwonyeo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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