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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순신 정신'을 배워야 하는 까닭은?

고객 소리함 게시판 읽기
작성일 2018-08-23 조회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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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순신 정신을 배워야하는 까닭은?

휴먼북서만영(이순신아카데미 강사)

 

먼저 퀴즈 한 토막. 그는 누구일까?

그는 위대한 장군이기에 앞서 선비였다. 그는 참으로 이를 어찌하겠는가’,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한탄한들 무엇하랴등 전시에 비관적인 말들을 수없이 쏟아냈다.

그는 영웅일까, 아니면 패장일까? 아직도 감이 오지 않는다면 결정적인 힌트를 드리겠다. 2323!

, 그렇지. 충무공 이순신 장군.

성웅 충무공께서 패배주의에 젖은 비관적인 표현들을 숱하게 쓰셨다고? 분명한 팩트다.

그가 남긴 불후의 저작 난중일기를 보라. 절망적인 상황이었지만, 그래서 현실에 대한 비관론을 토해냈지만

그는 한숨만 내쉬지 않았다. 날밤을 새면서 고심을 거듭한 끝에 기어이 위기 타개책을 찾아내고야 말았다.

그러니 그가 내뱉은 체념의 언어들은 달리 해석돼야 마땅하다. 그것은 과거의 상황을 묻고 씻어버리는 비움의

언어요, 주어진 최악의 현실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채움의 언어였던 거다. 우리가 오늘날 이순신 정신을 다시

되새겨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휴먼북서만영(63)씨는 이순신 마니아. 말 그대로 충무공에 미쳤다.

부산시청 공무원을 마지막으로 36년 간의 공직 생활을 서기관으로 마감한 그는 이순신 알리기에 올인하고 있다.

“10년 전에 김훈 작가의 이순신 소설 칼의 노래를 읽고 엄청난 감명을 받았어요. 이후 2013년 서면 영광도서에

서 김종대 전 헌법재판관이 이순신 아카데미를 열면서 강사를 모집하더라구요. 당장 달려가 6개월간 교육을 받고

강사 자격증을 땄습니다.”

현재 부산에서는 교육과정을 거친 강사가 70여 명이 있지만, 대부분 현업을 겸하고 있고, 전문 강사는 7명 정도에

불과하단다.



“‘청년 이순신양성에 힘을 쏟을 작정입니다. 아카데미는 연간 두 차례 열리며, 각 과정은 5(주당 2시간,

저녁 7~9) 교육으로 진행됩니다. 많은 젊은이들이 참여해주기를 바랍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이순신 인문학을 배워보자. 서 강사는 먼저 부산이야기부터 꺼내들었다.

1980년 제정된 부산 시민의 날105일이다. 이날에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길래? 바로 이순신 장군의 임진년

부산대첩 승전일이란다. 그걸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니. 사실 부산대첩은 결코 한산과 명량, 노량대첩에 못지않은

전과를 남긴 역사적 승전이었다. 1592년 파죽지세로 북진하던 왜군의 예봉을 처음으로 꺾은 실로 감격적인

대승이었던 것이다. “여수를 출발해 105일 자성대 인근에 도착한 이순신 장군의 수군은 부산포에 정박 중이던

왜군을 기습했습니다. 적선 100여 척과 군사 오천을 괴멸시킨 대첩이었죠. 부산대첩을 전환점으로 조선 수군이

제해권을 장악했으니 그 의의가 실로 지대합니다.”

서 강사의 이야기는 인근 안골포 해전으로 이어진다. 충무공은 여기서 적선 10척 중 8척만 불태우고 나머지 2척은

온전히 남겨두고 떠났다. ? 장수라면 적의 싹을 모조리 잘라야 할 엄중한 전시에 적선을 살려두다니.

혹시 충무공께서 왜군의 회유에 넘어간 걸까? 천만의 말씀! “여기서 이순신 정신의 정수를 접할 수 있습니다.

장군은 백성들의 안위를 위해 그랬던 겁니다. 적선을 모조리 가라앉혔다면 퇴로가 끊긴 왜군이 우리 백성들을

그냥 둘리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살아남은 적군이 바다로 도망가도록 두 척을 놔뒀던 거죠. 이순신 장군의

위대한 사랑에 가슴이 먹먹해질 따름입니다.”

왜 이충무공을 장군이기에 앞서 선비라고 했는지 이해가 되는가. 그는 승리에 앞서 애민과 애국을 생각한

 휴머니스트였다. 그 밑바탕에 독서가 있었다. 그는 늘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답을 찾기 위해 애썼다.

긴박한 전시 상황에서도 늘 책을 가까이 했다. 술을 마시고도 새벽닭이 울면 반드시 촛불 켜고 앉아 책을 읽거나

문서를 보면서 작전을 짰다.

승병선승이후구전(勝兵先勝而後求戰)! 손자병법에 나오는 말로 이순신을 항상 깨어있게 한 문장이다.

 ‘이기는 군대는 전쟁에 임하기 전에 승리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놓는다’. 23전 전승의 비결이 바로 이것

아닌가. 이순신의 신출귀몰한 전략과 전술은 모두 여기서 나왔다.



서 강사는 이순신의 핵심 정신을 사랑과 정성, 정의, 자립, 그리고 용기 등 다섯 가지로 꼽았다.

한마디로 내면의 인격자라는 얘기다. 인문학적 소양을 깊이 쌓지 않는다면 내세울 수 없는 덕목들이다.

 조선 수군을 호령했던 삼도수군통제사였지만 그에게서 갑질은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다.

피란 가는 백성들을 만나면 그냥 지나치는 일이 없었다. 말에서 내려 그들의 눈높이에 서서 손을 어루만지며

전쟁이 곧 끝나니 조금만 참으라고 토닥였던 그였다. 오로지 국민(백성)의 안위가 그의 유일한 목표였고,

여기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다. ‘장수된 자의 의()는 충()을 좇아야 하고, 충은 백성을 향해야 한다

그의 말은 시대를 건너뛰어 오늘날에도 변함없는 진리다.

왜군 패장 와키자카 야스히루가 후손들에게 남긴 절규를 들어보라.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이는 이순신이며,

가장 미워하는 이도 이순신이고, 가장 좋아하는 이도 이순신이며, 가장 흠모하고 숭상하는 이도 이순신이다.

가장 죽이고 싶은 이도 이순신이며 가장 차를 함께 마시고 싶은 이도 이순신이다.”

이순신 정신은 지금 여기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준엄한 교훈을 던져준다. ‘먼저 인간이 되어라!’

만인의 만인에 대한 전쟁으로 난장판이 된 오늘날, 소통과 사랑, 포용과 통합의 이순신 정신으로 극복하는 것은

물론이고 사회 정의를 확대재생산할 수 있다는 굳건한 믿음.

서 강사가 이순신 알리기에 온힘을 쏟는 건 이 때문이 아닐까.


이순 최원열 기자 choiwonyeo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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