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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초량왜관연구회 - 조선 도공들의 미카와치 가마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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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8-08-06 조회 2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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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초량왜관연구회(회장 강석환)는 지난 628일부터 71일까지 동아시아 해양교류역사탐방 행사로  일본 나가사키현 히라도(平戶)시와 사세보(佐世保)시를 답사했다.

일본의 도자기는 세계적이다. 어떻게 세계적인 도자기 국가가 되었는가? 임진왜란 당시 일본에 붙잡혀간 조선 도공들에 의해 일본 도자기의 역사가 시작되었고 꾸준히 연마한 결과 오늘의 명성을 얻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일본도 그걸 숨기려 하지 않고 오히려 자랑으로 내세우기까지 한다.

강 회장은 동아시아 국제교류와 조선도공의 아픈 역사를 통해 현재를 바라보면서 한·일 양국의 미래를 준비해 나갔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번 답사를 기획하게 됐다고 밝혔다.



일본에서 활동 중인 진해 웅천 사기장의 후손들

일본의 큐슈 나가사키현 사세보시의 미카와치라는 도자기 마을이 있다. 그곳의 에나가, 기하라, 미카와치에는 히라도번의 어용가마(御用窯)가 설치되어있었다. 오늘날 이들이 구워내는 그릇을 총칭하여 미카와치야끼(三川內燒) , 미카와치산 도자기라고 한다. 미카와치백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데 치밀한 자기표면에 섬세한 청화문양, 투각기법, 고온번조(燔造)로 인한 광채가 특징이다.


임진왜란 때 일본 히라도의 영주 마쓰라 시게노부(松浦鎭信)에 의해 포로로 경남 웅천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사기장들이 있다. 이들은 거관, 에이, 종차관으로서, 이들의 후손이 현재도 일본 사세보시 미카와치 마을에 모여 살며 도예업을 계승하고 있다. 이들 후손들은 각각 거관의 후손인 이마무라가문(今村), 에이의 후손인 나카자토가문(中里), 종차관의 후손인 후쿠모토가문(福本)을 형성하고 있다.


나카자토가문의 17세손 나카자토 이치로(中里一郞) 씨는 억수 같은 빗속에서도 환하게 웃으며 반갑게 우리 일행을 맞아주었다. 그는 백자에다 특화된 국화조각세공기술로 국가검정1급기능사이자 사세보시 지정무형문화재이다. 그는 자신의 공방에서 나는 한국 사람이다. 한국과 계속 교류하고 싶다!”며 선조들로부터 이어져온 미카와치 도자기 이야기에 이어, 1999년에 단 1회로 끝난 웅천도요지헌다례한일교류행사의 낡은 브로슈를 보여주며 많이도 아쉬워했다.

백자에다 특화된 국화조각세공기술로 국가검정1급기능사이자 사세보시 지정무형문화재 나카자토 이치로씨


도조신사(陶祖神社)의 신이 된 이마무라가문(今村)의 조엔

 

미카와치에는 조선인의 후예가 신으로 모셔져 있는 신사가 있다. 도조신사(陶祖神社)가 바로 그것이다. 조선인이 일본 도자기의 시조가 되었다고 하면 일반적으로 사가현(佐賀縣) 아리타(有田) 도자기의 시조라 불리우는 이참평을 떠올리기 쉽다. 도조는 아리타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일본 여러 곳에 존재한다. 그 중 미카와치 도자기의 도조는 조선인 후예 이마무라(거관의 후예)의 조엔(如遠)이었다. 도조신사에 모셔지기까지의 여정을 통해 임란 때 일본으로 건너간 조선도공이 어떻게 일본사회에 정착하는지와 신이 되는지를 다음과 같이 볼 수 있었다.


덴마크 박물관장을 역임한 에밀 한노오바가 미카와치 자기를 평했는데, “1750년부터 1830년까지 일본이 생산한 자기 가운데 백색으로 빛나는 최고의 제품인 나베시마나 아리타의 제품은 여기에 따라오지도 못한다.”고 할 만큼 절찬을 받은 적이 있다. 특히 이곳의 백자는 달걀껍질처럼 얇고 단단했다. 이것이 나가사키에 체재하고 있었던 네덜란드 상인들의 주목을 끌어 유럽에 수출하는 기회를 얻었다. 이러한 자기의 생산이 있기까지는 이마무라 집안이 배출한 도공을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다. 그들의 시조는 임란 때 포로로 잡혀간 경남 웅천출신 도공 거관이었다. 그는 그릇을 구우면서도 끊임없이 백자생산을 위한 기술을 연마했다. 그 뒤를 이은 아들 산노조도 부친의 기술을 계승하는 한편, 백자를 생산하기 위한 기술을 터득하기 위해 당시 유명한 도공들을 찾아다니며 수련을 쌓았다. 하지만 도자기흙 즉, 도토의 문제로 완벽한 백색 그릇을 구워내지는 못했다.

 

이것을 완벽하게 해결한 자가 산노조의 아들 조엔이었다. 그는 조부와 부친의 기술을 계승하는 한편 도토 찾기에도 게을리 하지 않은 끝에 드디어 구마모토의 아마쿠사에서 만족할 만한 도토를 발견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지주와 계약을 맺어 지속적인 재료수급의 발판을 마련했다. 그로 인해 미카와치는 비로소 순수한 백색의 자기그릇을 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

그 결과는 엄청났다. 막부 쇼군(장군)과 각지 영주에게 헌상품을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천황가에 헌상할 그릇을 만들게 되었던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재일 조선인 3세 조엔은 미카와치의 백자를 지역상품이 아닌 전국 상품으로 발전시킨 장본인이었다. 이러한 공적이 인정되어 봉건 영주의 명에 의해 그는 죽어서 미카와치 도자기의 도조(陶祖)로 인정되어 도조신사에 모셔지는 신이 되었던 것이다. 이것은 초대가 도조가 되는 타 지역의 사례들과 비교하면 매우 이례적인 것이며, 도조신사는 독립된 공간을 확보하고 있으며 보조가 아닌 주신으로 모셔져 있다는 점이다. 이처럼 이마무라 조엔은 미카와치에 있어서 특별한 존재였다

이마무라 조엔을 기리는 도조신사 입구


미카와치 도자기 미술관

 

사세보가 자랑하는 400년 전통의 미카와치 도자기는 그 고도의 기술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백자에 고스라고 하는 남색의 염료로 도안을 그려 넣고, 장식으로 향로 등의 미술품을 섬세하게 조각한 다음, 마지막으로 투명하게 구워내는 방법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미카와치 전시관 조선도공 400주년기념으로 만든 대형 대접 안에는 당자(중국아이)400명 그려져 있는데 천황이 와서 한 명의 웃는 얼굴을 찾은 게 뉴스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400주년기념으로 만든 대형 대접 안에는 당자(중국아이)400명 그려져 있다.


아리타야끼(有田燒) 포세린 파크(Porcelain Park)

 

아리타야끼는 약 400년 전 임진왜란에 참전했던 나베시마 나오시게가 조선의 도공들과 함께 도자기를 만들던 중 백자광을 발견하고 가마를 설치한 것이 아리타에서 구운 도자기의 시초이다. 당시 일본에서도 도기를 제조하고는 있었지만 자기를 굽는 기술은 없어 우수한 도자기는 금·은과 같은 가치를 지니고 있을 정도였다.

아리타도자기 테마파크는 독일의 드레스덴(Dresden)에 있는 즈빙가(Zwinger)궁전을 모방해 건립한 것이다. 내부에는 아리타야끼에서 만든 도자기전시관이 있으며, 포세린히스토리관은 유럽에 수출했던 도자기들을 다시 구입해 와 당시의 궁전내부를 완벽하게 재현해 놓았는데 정말 아름답고 화려했다.

 

 포세린 파크(Porcelain Park) 전경


고려다완(高麗茶碗)은 일본에 전해진 조선의 도자기 가운데 찻사발로 이용된 종류를 말하는데, 중국의 회화나 공예품을 당물(唐物)이라 하듯, 조선 각지의 가마에서 제작된 다완을 고려다완이라 통칭한다. 그러나 그 명칭과 달리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것은 매우 적고 대부분이 조선시대에 제작되었다.


15세기 후반 일본에서는 무로다 주코우(村田珠光, 1423~1502)가 주창한 와비, 사비의 차풍속이 급속히 퍼짐에 따라 다도구도 중국제품에서 와비차에 어울리는 양식으로 변화를 모색하게 된다. 와비차란 외면의 겉치레나 권위적인 상징을 배제하고, 간소하고 절제된 정신세계를 중시하는 독특한 음차방식이다. 이러한 차 문화를 배경으로 고려다완이 각광받게 된 것이다. 일상용기에서 느껴지는 장식성을 배제한 무기교와 무작위의 자연미를 갖춘 조선의 사발은 일본의 다인들에 의해, 와비차의 다완으로 선택되어 대명물 등으로 불리며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이번 답사를 통해 실감하게 된 것은, 임진왜란이 도자기전쟁이라 불리는 진정한 이유와 당시의 국제정세는 물론이고, 조선도공들의 최고를 향한 끊임없는 연구, 기술연마, 도토 찾기 등은 이국(異國)에서 이룩해낸 쾌거 정도가 아니라 신의 경지에까지 이르게 한 원동력이라는 점이다. 또한 가깝고도 먼 이웃 일본에 대해 선린외교를 지향하는 초량왜관연구회의 노력에 응원과 박수를 보낸다


주정호 김진옥 기자 aceofki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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