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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철 보양식 "꼼장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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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8-02-21 조회 1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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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부머들의 겨울철 최고 보양식 꼼장어’-온천장 곰장어골목

 

여름철 대표적 시중 보양식으로 부산사람들은 돼지국밥을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땀을 뻘뻘 흘리며 뜨거운 국물과 구수한 돼지수육을 함께 입에 넣은 먹는 맛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그러면 겨울철 부산의 대표적 보양식은? 옛날 겨울철 포장마차에서 먹던 그 기막힌 비주얼과 코끝을 파고드는 강렬한 향기의 안줏거리가 생각나시는지. 아니면 자갈치 뒷골목에 연탄구이로 연신 뒤집으며 구워먹던 그것은? 그렇다. 꼼장어구이! 불포화지방산을 다량함유한 고단백질 식품으로 노령기에 접어드는 베이비부머들에겐 최고의 겨울 보양식으로 추천할 만하다. 이제 꼼장어의 세계에 빠져보자!

 


#곰장어라 쓰고, ‘꼼장어로 읽는다

 

고놈, 참 희한하게 생겼다. 수염을 달고 있으되 눈이 보이질 않는다. 턱이 없고, 흡사 빨판같은 게 입을 대신한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끈적끈적한 진액을 마구 뿜어낸다. 여기에다 거무튀튀한 몸통까지 흉측하고 징그럽다.

곰장어의 자태(?)가 이러하다. 수족관안에 뭉쳐있는 모습은 아주 얌전하고 유순하다. 하지만 속지 마시라. 성질이 매우 고약하니까. 이 놈은 물고기나 오징어에 달라붙어 살과 내장을 녹여서 빨아먹어 치운다. 한번 붙잡히면 뼈밖에 남지 않는다. 그러니 다른 물고기들이 옆에 얼씬거리지 못한다. 한마디로 무서운 기생성 바다괴물이다.

표준말은 곰장어와 먹장어. 부산에선 지글지글 익는 불판에 올려 놔도 한동안 꼼지락꼼지락한다고 해서 꼼장어로 불린다. 그 꿈틀거림이 장난이 아니어서 그냥 두면 잘린 살점이 불판을 뛰쳐나가기도 하니 두껑을 덮고 단단히 눌러야 한다. 자장면과 짜장면. 물론 자장면이 표준어였다. 하지만 전국적으로 짜장면이라 부르니 표준어가 됐듯이 부산발 꼼장어도 사전에 등록될 날이 머지 않은 듯하다.

곰장어의 정식 학명은 먹장어. 눈이 멀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지방 사투리로 묵장어, 꾀장어 등이 있다. 보길도에선 끈끈한 풀 같은 게 나온다 해서 푸장어로 부른다.

꼼장어는 앞서 소개한 대로 그 생명력이 대단하다. 도마에 박힌 송곳에 꼼장어 머리를 꽂고 껍질을 단숨에 벗겨낸다. 내장을 떼어낸 뒤 토막을 치는 과정은 소름이 돋을 정도로 영 보기에 좋지 않다. 가죽이 벗겨지고, 몸통이 토막토막 잘려졌는데도 불판 위에서 몸을 비비꼬며 꼼지락춤을 춘다. 정약전이 자산어보에서 장어는 뱀처럼 머리를 잘라내지 않으면 죽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나. 실제 껍질이 벗겨진 채로 놔둘 경우 10시간이나 살아 움직인다고 하니 놀랍다. 꼼장어 굽는 모습을 처음보는 이들은 눈이 화등잔만해지고, 입이 쩍 벌어지는 게 당연하다. 비위가 상해 먹는 걸 주저하는 이들도 다반사.

하지만 맛은 별천지다. 못생겨서 거시기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보잘것없는 건 아니다. 구운 살점을 입에 넣는 순간 확 풍겨오는 매콤한 맛과 쫄깃한 식감은 어디에 내놔도 뒤지지 않는 특급 요리다. 더구나 씹으면서 느끼는 화끈함은 부산다움을 상징하는 로컬푸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꼼장어, 부산의 맛이 되다

 

그렇다면 왜 꼼장어 구이가 유독 부산을 대표하는 먹을거리로 자리잡게 됐을까. 그 유래를 따지자면 일제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당시 부산에는 꼼장어 가죽공장이 있어서 수요가 엄청났다. 일제는 식민지인 우리나라에 전진기지를 세워 꼼장어 가죽제품을 생산했다. 질기고 부드러운 꼼장어 가죽으로 일본 나막신(게다)끈과 모자테 등을 만들었는데 일제 말기에 요리가 등장한 것으로 보인다. 1936년 경상남도 수산시험장 보고서엔 부산부 울산군 부근의 한 하급음식점에서 먹장어 요리를 낸다고 기록돼 있다. 하지만 시작단계일 뿐, 꼼장어 요리가 일반화됐다고 보기는 힘들다.

여기서 한일간 장어 교환 실상을 간략히 소개할 필요가 있겠다. 일본인 작가가 쓴 한일 피시로드에 따르면 일본은 꼼장어를 수출하는 대신, 갯장어(하모)를 수입했다. 꼼장어를 먹지 않는 일본이 부산 자갈치시장 주변 꼼장어 피혁공장으로 자국산을 대량 들여왔다. 물론 가죽만 사용하고 고기는 버렸는데 배고픈 서민들이 이를 가져다 먹기 시작했다고 한다. 반면 일본에서 한국산 갯장어는 최상품으로 팔려나갔다. 지금도 일본의 교토 중앙시장에서 거래되는 갯장어의 3할 정도가 한국산이라고. 마찬가지로 부산에서 맛보는 꼼장어 상당량이 일본산인 셈. 다시 말해 우리나라 꼼장어 수요가 워낙 많아 국내산으로는 어림도 없다는 얘기다. 일본에서 갯장어가 인기상종가를 치자, 원래 갯장어를 먹지 않았던 우리나라에서도 샤브샤브 등 여름 보양식으로 등장했다고 하니 언젠가 일본인들도 곰장어맛에 반할 때가 오지 않을까 싶다. 꼼장어는 겉모습이 볼썽사납지만, 맛으로 치면 세계에 자랑할만한 부산발 한류음식임에 틀림없으니까.

꼼장어가 부산의 향토음식으로 등장한 결정적 계기는 한국전쟁이었다. 해방이 되자 대거 부산으로 건너온 일본 동포들이 자갈치에서 좌판을 열었는데 전쟁이 터지자 이들 좌판에서 꼼장어가 등장했다. 당시 토박이들의 기억에 의하면 1950년대 중반 자갈치에 꼼장어를 구워팔던 좌판이 7군데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자갈치는 꼼장어 구이의 원조가 되었고 부산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꼼장어는 부산을 상징하는 피난민 음식이자 영양가 만점의 구황 음식이었으며 서민 음식이었다. 거슬러 올라가면 일제가 꼼장어가죽만 전량 빼돌리고, 고기는 우리나라에 버렸다는 점에서 식민지 수탈의 산물이기도 했다. 꼼장어엔 한민족의 수난사가 짙게 배어있는 것이다.


 


#꼼장어가 온천장으로 향한 까닭은?

 

꼼장어 구이는 발상지인 자갈치에서 매우 빠른 속도로 퍼져나가 부산 전역의 유명 전통시장을 중심으로 자리를 잡았다. 대표적인 곳이 기장과 해운대, 부전역, 그리고 동래 온천장 등이 꼽힌다. 뭔가 연관성이 떠오르지 않나. 그렇다. 철길이다. 꼼장어 집산지인 기장에서 출발해 부산역으로 이어지는 동해남부선. 최원준 시인의 꼼장어 로드론이다. 그의 주장을 들어보자. “재첩국이 양동이를 들고 새벽에 부산 곳곳을 누빈 이른바 재치국 아지매들에 의해 로컬푸드로 확실히 자리잡은 것과 마찬가지로 꼼장어 역시 철길을 통해 영역이 확대되었다.” 매우 설득력있는 가설이다. 기장역에서 꼼장어를 싣고 기차를 탄 아낙네들이 주요 역에서 내려 장터를 형성했을 것이다. 해운대와 부전역이 그렇고 동래역 또한 그러하다. 모두 교통요충지여서 꼼장어를 팔기에 좋은 조건을 갖췄다. 전국적인 명승지 온천장은 동래역에서 가까워 더할 나위없이 입지 여건이 좋다. 동래시장에도 이름난 꼼장어골목이 형성됐음은 물론이다.

온천장에서는 1970년대 들어 현 녹천탕과 녹천호텔 주차장 위치에 5~8평 크기의 꼼장어 식당 5군데가 한데 들어서면서 골목시장을 형성했다. 당시 꼼장어골목이 다닥다닥 붙은 가건물로 이어져 유명세를 탔다고 한다. 80년대엔 꼼장어가 포장마차의 소주안주 1호로 꼽힐 만큼 사랑을 받은데다 스태미너식품으로도 각광받으면서 소위 꼼장어 전성시대를 열었다. 온천탕과 온천극장 주변의 유흥가, 곰장어골목 등이 어우러진 동래 온천장은 당시 부산 최고의 노른자위로 명성을 떨쳤다. 지금은 허심청 주변에 꼼장어 전문식당이 10곳 남짓 영업중이다.

 

#온천장 꼼장어, 혀를 훔치다

 

고기의 구수함에 고추장의 화끈한 맛이 더해지면서 꼼장어구이는 부산다움을 확실히 갖춘 로컬푸드이자 문화적 텍스트가 되었다. 부산을 찾아 꼼장어를 맛봤던 한일피시로드의 저자가 예리한 질문을 던졌다. 왜 곰장어볶음이 아니라 구이냐고. 철판이나 돌판에 양념을 한 고기를 넣어 익히는 건 사실 구이가 아니라 볶음이 맞다. 비록 초벌구이를 해서 올렸다 하더라도 말이다. 그런데 과거에는 꼼장어를 양념에 재서 꼬치로 굽거나 석쇠로 구워냈다. 50대 이상 중년이라면 아련한 어릴 적 추억이 있을 게다. 500원 정도의 거금(?)이 생기면 냅다 동네시장으로 달려가 노릇노릇 구워지는 꼼장어의 구수한 냄새에 혹했던 그 시절. 할머니가 양푼이에 숭숭 썬 양파와 대파 등을 넣고 빛깔좋은 고추장을 한 숟갈 척 걸친 뒤 막 잡은 꼼장어를 함께 버무린다. 그리고 석쇠에 올려 이리저리 뒤집어가며 굽던 모습을 바라보며 침을 질질 흘리기도 했었다. 짜장면 한 그릇 사먹기 벅찼던 그때만 해도 참으로 환상적인 비주얼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꼼장어구이도 방식이 바뀌었다. 살점에서 떨어지는 기름이 타면서 유독성분이 나온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철판이나 돌판에 알루미늄 호일을 덧씌우게 됐다. 조리방식이 바뀌었는데도 구이라는 이름이 떡하니 버티는 바람에 꼼장어볶음은 탄생하지 못했고.

부산 꼼장어구이는 지역적으로 차이를 보인다. 자갈치시장의 양념구이와 기장의 짚불구이, 부전역의 석쇠구이, 그리고 온천장의 소금구이가 대표적. 소금구이는 토막낸 산꼼장어와 다진 마늘, 후추, 참기름 등을 넣어 익힌다. 꼼장어 살점들이 몸을 비비틀며 적나라한 춤을 춘다. 그만큼 싱싱하다. 불판쇼가 끝나면 구수한 냄새가 피어오른다. 이리저리 뒤집어 잘 익힌 후 한 점을 소금장에 찍어 맛본다. 짭짤하고 고소한 맛에 쫄깃한 꼼장어가 어우러지면서 담백함이 입안을 감돈다. 애주가들은 소주 한잔 원샷을 잊지 않는다. 그렇게 온천장의 밤이 꼼장어 굽는 냄새와 함께 농염하게 익어간다.

소금구이가 여성적인 맛이라면 양념구이는 남성적 취향이라 하겠다. 향인 강한 양파와 대파 등을 듬뿍 넣고 맵싸한 고추장을 쓱쓱 비벼 초벌구이한 꼼장어를 불판에 올리면 불타는 정열이 따로 없다. 시각과 청각, 후각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이제 미각을 충족시켜야 한다. 고추장과 버무러져 벌겋게 익은 살점과 마늘을 깻잎에 싸서 입안에 냉큼 넣는다. 화끈하고 원초적인 맛이다. 매운 맛에 약한 사람들은 물을 찾기에 바쁘다. 물인 줄 알고 술잔을 들이키는 사람들도 부지기수. 하지만 이 맛에 길들여지면 헤어날 수가 없다. 그만큼 중독성이 강하다. 이러니 온천장 골목에서도 소금구이만 고집할 수 없을 터. 자갈치와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맛있는 양념구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한편 짚불구이는 기장에 가야 제 맛을 볼 수 있다. 요리방식을 보면 매우 원시적이고 엽기적이다. 훨훨 타오르는 짚불에 산곰장어를 집어던져 구워먹으니까. 그 옛날 배곯던 시절, 논두렁 짚더미에 굽던 방식이 오늘날 아궁이로 옮겨져 진화한 것. 시커멓게 탄 걸 어찌 먹겠나 싶다. 하지만 껍질을 벗겨내면 하얗게 익은 속살이 군침돌게 한다. 모락모락 김이 나는 속살을 기름장에 찍어 입에 넣으면 그렇게 부드럽고 고소할 수가 없다. 아무튼 보릿고개 시절 꼼장어 세 마리면 하루를 든든히 버틸 수 있었다고 하니 최고의 보양식임엔 틀림없다.

이순 최원열 기자 choiwonyeo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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