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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효상 국가건축정책위원회 위원장 특강, ‘거주 풍경’ -

고객 소리함 게시판 읽기
작성일 2019-10-16 조회 2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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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건축제는 소유나 재산가치로서의 주택이 아니라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을 찾는 경험과 행복의 거주공간으로 인식해야 한다는데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승효상 위원장은 집이란 온 가족이 무엇을 할 것인가를 꿈꾸고 그 꿈꾼 결과가 무르익는 출발점이자 돌아갈 곳이라고 정의 내리고, 다음 시를 소개하며 강의를 열었습니다.

 

우리들이 태어난 집은 단순한 건물 이상의 것이다

그것은 꿈들의 집적체다

옛날 그 집의 구석진 곳들 모두 하나하나가 몽상의 장소였으며

그 장소는 몽상을 특수화한다

우리들은 거기서 특수한 습관을 익혔다

우리들이 홀로 있었던 집, , 공간은

끝없는 몽상, 오직 시를 작품으로 끝내고 완성 시킬 수 있을

그러한 몽상의 무대를 제공한다

- 가스통 바슐라르

 

안드레아 팔라디오의 빌라 로툰다

빌라 로툰다는 16세기 중엽 안드레아 팔라디오라는 르네상스 시대 건축가가 이탈리아 북부 도시 비첸차(Vicenza)에 지은 집입니다. 이 집 이전에는 서양 건축이 여러 갈래로 형성되어 오다가 이 집이 들어선 다음부터 모든 서양 건축은 이 집을 바탕으로, 이 집의 형상을 빌어 짓게 됩니다. 그건 21세기가 된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어, 이 집은 서양 건축의 핵심적 텍스트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 집은 비례, 장식, 형태에서 건축의 표본으로 거론되게 됐습니다.

이 집의 특징은 정사각형 평면 가운데에 홀(로툰다 홀)을 두고 홀의 중앙에서 양 사방으로 바깥 풍경을 관찰하고 제어할 수 있습니다. 이 집은 제우스 신을 비롯한 만 가지 신을 조각해뒀습니다. 이 신들이 나를 보호해줘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자임을 인식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회재 이언적의 독락당獨樂堂

조선 중종 때 성리학자 회재 이언적은 빌라 로툰다를 지은 안드레아 팔라디오와 거의 동시대 사람입니다. 회재 이언적이 경주 양동마을로 낙향하여 지은 집이 독락당입니다. 이 집을 들어가기 위해 문을 바라보면 오른쪽에 반듯한 담장으로 싸인 집이 나옵니다. 이건 사람 사는 집이 아닌 창고용(공수간)입니다. 창고용임에도 마치 사람이 사는 것처럼 독립적으로 구성되어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입구가 세 군데 있는데, 왼쪽 첫째 문을 통해 들어가면 아주 깊고 긴 마당이 나옵니다. 이것이 행랑마당입니다. 이 행랑마당에 붙어있는 안마당은 안전해서 부인과 어린이들이 거처하는 곳입니다. 문을 나서서 다시 건너편에 있는 사랑채 문을 열고 들어가면 사랑마당이 나옵니다. 사랑마당에 있는 집이 사랑채인 옥산정사玉山精舍입니다. 아무 목적 없이 나무만 있는 마당도 있고, 겹마당을 두어 사랑채로 가는 동선을 좀 더 경건하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또 담장의 연장선상의 끝에 있는 정자도 독립적이지 않습니다. 결국 이 정자도 마당을 형성하기 위한 도구로 쓰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만 밖에서 보면 이 정자는 굉장히 아름답습니다. 따라서 이 집은 철저히 마당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옛날에도 도면은 있었습니다. 보통 양반들이 스스로 어떤 집을 지을까를 생각해서 붓으로 도면을 그립니다. 현재 이 집을 그린 도면은 남아있지 않지만, 회재가 도면에서 그리고자 한 것은 집의 크기와 안마당, 뒷마당 등 공간의 관계를 그린 것입니다. 독락당을 제대로 보려면 마당 등 공간의 관계(보이지 않는 것)를 보는 것이 이 건축을 제대로 감상하는 법이라고 했습니다. 비단 독락당만 그런 게 아니라 우리의 옛 건축은 모두 나와 건축과의 관계 등 보이지 않는 공간을 보려는 윤리적인 눈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Less Aesthetics More Ethics(더 이상 미학이 아닌 윤리)

2000년 베니스 비엔날레 국제건축전에서, “이제 더는 미학이 아닌 윤리란 구호를 내걸었습니다. 서양 건축사는 건물의 크기, 형태, 비례 등 전부 다 미학입니다. 따라서 서양 건축사에서 나와 건축의 관계등 관계를 설명하는 곳은 한 군데도 없습니다. ‘윤리는 서양 건축사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단어입니다.

윤리는 우리 선조들이 집을 지을 때 자연과 나, 건축과 우리 가족 사이를 생각하며 지은 것이었습니다. 우리 선조들이 철저히 윤리적으로 집을 지었지만, 우리는 윤리를 저버리고 서양의 미학을 쫓아서 지나치게 달려오고 있는 데 반해, 서양 사람들은 더는 미학이 아니라 윤리가 맞다고 선언을 한 것입니다.

 

우리 건축의 변화상

한국전쟁 때까지만 해도 도시의 많은 사람들이 마당을 가운데 두고 모여 살았습니다. 하여 마당이 아름다운 게 우리 고유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한국전쟁 이후 도시가 파괴되고 서양문물이 들어오면서 서구화가 곧 근대화인 줄 착각하고 뒤쫓아간 결과 슬라브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60년대 말부터 우리의 주거 모습이 된 것입니다. 세계건축사에서 보면 공공건축이나 사회건축의 모습은 양식에 따라 변하지만, 주거는 로마시대나 최근의 아파트나 거의 똑같습니다. 지난 몇천 년 동안 우리나라 집들도 변하지 않았는데 60년대 말부터 모여 사는 모습이 아니라 붙어사는 모습으로 바뀌었습니다. 즉 공동주택이 아니라 집합주택으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우리네 집은 문간방, 안방 등 위치에 따라 방을 불렀습니다. 또 문간방이든 안방이든 밥 먹고 싶으면 밥상을 펴면 되고, 요강을 갖다 놓으면 변소가 됩니다. 자신이 원하고 생각하는 대로 주관적으로 방의 용도를 바꾸어쓰면 그만입니다. 이렇듯 예전에 우리는 집을 주체적으로 썼습니다. 집은 거주하는 사람이 살아가면서 완성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집은 비워져 있는 게 맞습니다.

요즘은 공간개념이 객체적으로 바뀌었습니다. 방마다 가구를 배치해 가구가 시키는 대로 합니다. 식당 가면 식탁이 있으니 식사를 해야 하고, 거실에는 소파가 있으니 앉아서 TV를 보는 식입니다. 집이 목적이 되면 사는 사람은 수단이 되고 맙니다. 집이란 자연을 매개하는 수단으로서만 존재해야지 집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집이 수단이 되어야 살고 있는 사람이 목적이 되게 됩니다.

 

거주居住

터키의 아나톨리아에서는 6천 년 전 경사면에 흙집을 다닥다닥 붙여 짓고 살았던 집단거주지가 발굴되었습니다. 중국 산둥지방에서는 7천 년 전 평지에 땅을 파서 마당을 만들고 마당 주변에 방을 뚫어서 거주했던 집이 지금도 남아있습니다. 이라크의 시스템이 있는 최초의 도시 우르에서는 큰집(부자)과 작은 집(가난한 집)이 아주 치밀하게 섞여 있습니다.

그렇다면 아파트공화국에 사는 우리의 삶은 6~7천 년 전보다 나은가?

답은 아니다입니다. 임대주택에 산다고 따돌림 당한다면, 6~7천 년 전보다 훨씬 야만적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공동체적 삶을 살아야 합니다.

어떻게 모여 살 것인가에 대해 답을 제시하는 비엔나는, 85%가 공공임대주택을 가진 도시입니다. ‘임대전용자가라는 개념이 거의 없습니다. 임대주택을 빌려도 권리가 최대한 보장되기 때문에, 자손에게 물려줄 수도 있습니다.

비엔나는 4가지 중요한 정책을 씁니다. 첫째, 건축설계가 중요하다. 둘째, 비용이 중요하다. 셋째, 자연친화가 중요하다. 넷째, 같이 모여 사는 사회적 거주방식이 중요하다.

비엔나 외곽지역에 1800세대가 모여 사는데 이 안에는 공동탁아소, 공동목욕탕, 공동세탁장이 구비되어 있는 수요자 위주의 공유마을이 있습니다. 1930, 이 마을은 거주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주택건설에 참여하여 스스로 노동력을 제공하였습니다.

우리나라의 주택정책은 적절치 못한 단어입니다. 왜냐하면 주택이란 물적 대상이라 하드웨어적입니다. 이 말을 거주정책혹은 주거정책으로 바꿔야 합니다. 그래야 삶의 본질을 이야기하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주택이 부족해서 공급하는 데만 급급하다 보니 어떻게 모여 살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습니다.

승효상 위원장은 우리나라는 도시를 누가 설계했는지 모른다고 했습니다. 그건 단편적으로 작업을 했기 때문이랍니다. 또 평면에 빨간색, 파란색, 노란색을 칠하지 말라고도 했습니다. 그 전에 어떤 도시가 될 것이지 이미지를 먼저 만들고, 그 상태에서 필요한 법규를 적용해서 이 도시가 어떻게 될 것인지 미리 짐작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주택을 부동산으로 알고 오를 때를 기다렸다가 팔고, 팔고 나면 다른 데로 옮겨가는 도시의 유목민이 되어 떠돌고 있습니다. 지난 시대는 정보를 가진 자가 권력자였지만, 지금은 누구나 SNS를 통해 권력자가 됐습니다. 당연히 주택도 공급자 위주에서 수요자 위주로 바뀌어야 함에도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정책은 시대착오적인 정책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이 방식을 바꾸어야 합니다. 어떻게 바꿀 것인가?

역사마을 보존원칙을 적용하면 진정성이 유지됩니다. 첫째, 지형을 보존하면 주변과 관계가 좋아집니다. 둘째, 필지()를 보존하면 풍경이 보존됩니다. 셋째, 길을 보존해야 합니다. 길은 사람들이 모여 살았던 공동체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넷째, 생활방법을 보존하면 생소한 환경생성이 해소되어 원주민이 마을을 떠나는 일이 없어집니다.

위 네 가지를 보존하면 마을이 보존됩니다.

 

어린 시절 좁은 집에 온 가족이 모여 살면서 동네 아이들과 골목에서, 마당에서 공기받기 등을 하며 놀았던 아련한 추억이 있습니다. 세월이 흘러 아파트로 입주하였습니다. 아파트의 편리함에 익숙해지면서 공동체 생활은 서서히 잊혀져 갔습니다. 어쩌면 달리 방법이 없다며 체념하고 살았는지도 모릅니다. 근데 비엔나의 수요자 위주의 공유마을 같은 모범사례를 접하고, 우리의 특성에 맞게 도입하여 진정으로 우리의 꿈이 무르익고 실현되는 거주공간으로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김진옥 기자   aceofki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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