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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 난민

고객 소리함 게시판 읽기
작성일 2018-12-12 조회 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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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 난민

 

바쁜 일정들이 다 끝나고 나니 몸도 마음 무기력해져 오전 내내 게으름을 피우다가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오랜만에 영화도 보고 맛난 저녁도 함께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지금 김장하니까 김치통 들고 냉큼 오라는 말에 

겨우 눈꼽만 떼고 후다닥 달려갔다. 나는 김장을 하지 않는다. 오랫동안 친정 엄마를 모시고 살았고 또 직장생활을 

한답시고 먼 산 건너 불구경하듯 한 것이 김장이었다. 그러다가 엄마가 돌아가시고 난 후에 김치 가뭄으로 엄마의 

부재를 실감한다.

전통적인 김장 시즌은 입동 전후 5일 안팎이다. 한국김치협회에서는 1122일을 김치의 날로 선정했다

김장 시기인 11월에 김장이 22가지 건강학적 효능을 지녔다고 해서 그랬단다. 김장은 겨울에 생산하기 어려운

 채소류를 보관했다가 한겨울에 먹을 수 있도록 우리 조상들이 개발해 낸 슬기로운 전통 식품이다. 김장 시즌이 되면 

알이 실하고 맛난 배추와 무 등을 선별해서 씻고 소슴에 절이고 또 그전부터 고추를 다듬고 방앗간에 가서 곱게 

빻아오고, 토종 마늘을 구하고 제대로 맛을 내는 젓갈을 확보하고 기호에 따라 생굴을 넣기고 하고 온 가족이 함께 

무슨 행사처럼 치러내는 것이 김장이었다.

대부분의 친정 엄마들은 적게는 50포기에서 100포기 정도의 김장을 해서 자녀들에게 부쳐주시고 나눠먹고 하셨다

김장 당일날은 여럿이서 김치를 담그고 돼지 수육을 구수하게 삶아 갓 치댄 김장 김치를 쭈욱 찢어서 생굴 등과 함께 

먹었던 것이 내가 기억하는 김장이다. 할머니의 엄마가, 엄마의 엄마가, 딸의 엄마가 전수해주는 것이 김장 비법이고 

집집마다 조금씩 다 특색이 있다

201312월에 이러한 김장 문화가 유네스코에 인류문화무형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가족이 기초가 된 공동체가 함께 

만들고 어러 세대에 걸쳐 전수됐으며 독창적이고 유익한 발효식품으로 높이 평가되었기 때문이다.

김장 김치가 겨우내 반식량이었던 시절에는 포기 배추와 무를 배달하는 트럭을 종종 볼 수 있었는데 요즈음은 

산지에서 절여서 택배로 배추를 받는 집이 대부분이다. 배추 속만 준비해 놓았다가 버무리면 되는데 노동의 절반이 

줄어든 셈이다. 그나마 이정도의 김장이라도 하는 집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일단 가족 구성원의 수가 줄어들었고, 집에서 식사하는 횟수가 많지 않으며, 사계절 내내 원하는 야채를 손쉽게 구할 

수 있으니 김치의 소비가 줄고 따라서 힘들게 김장을 하려고 들지 않는다. 개인적인 생각인데 우리 세대에서 김장은 

마무리되지 않을까 염려된다. 다음 세대에서 과연 김장이라는 것을 할까유네스코도 인정한 소중한 우리의 유산인데 

심지어 중국에서 김치의 종주국이 자기네라고 한다는 보도를 얼핏 접한 적도 있다. 씁쓸함을 금치 못하지만 누굴 

탓하랴. 나조차도 김장을 안하면서...



더구나 주거 현태의 변형으로 김장독을 땅 속에 묻어 보관하던 것이 이제는 김치 냉장고의 등장으로 아파트에서도 

변함없는 김치 맛을 볼 수가 있게 되었다. 김장 김치가 맛을 내는 조건은 3~5도 사이에서 2~3주 지났을 때인데 김치

 냉장고가 이런 기능을 대신해 주기 때문이다. 또한 김치 장인이니 명인이니 하는 사람들의 김치가 상품화되어 

홈쇼핑이나 인터넷 쇼핑을 통해서 활발하게 유통되고 있으니 더더욱 김장을 할 필요성을 못 느끼게 된다.

하지만 이 세상에서 엄마표 김치를 대신할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엄마의 자기 희생이 강요된, 어쩌면 넙죽 받아먹기만 하는 자들의 계속 받아먹기를 염원 하는 발상일 지도 모르지만...

친구의 엄마가 여든이 넘으신 연세에도 해매다 아들, 딸들에게 김장이며 된장, 고추장을 담아 보내셨는데 올해는 

낙상을 하셔서 병원 신세를 지고 계신다. 어쩔 수 없이 김장 은퇴를 하시게 되었는데 덕분에 그집 일가들은 나처럼 

김치 난민 신세가 되었다.

얻어온 김치는 빨리 동나고 산 김치는 비싸서 감질나고... 

김치 난민에게 김치통 들고 뛰어나오라는 말은 애인보다 반갑다.

내년부터는 니가 김장 할 때 나도 같이 할게.” 하면서 김장턱으로 낸 녹두삼계탕을 후루룩 먹으면서 약속한다.

지켜질지 모르지만....

 

이순/최원열 leesoon106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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